피어싱

*차유진 시점. 논커플링 막내즈 일상. 대충 부름(Nightmare) 활동기 어디쯤… 

* 부분적으로 소설의 미리니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차유진은 테스타가 좋았다.

  무대는 멋졌고 활동은 즐거웠다. 그룹 멤버들은…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이 표현을 근래 배웠다. ‘나쁘지 않다’의 이중 부정은 어딘가 젠체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걸 한번 더 꼬아 만든 한국의 최상급 극호(好) 표현이란 마치 제대로 된 블랙 유머처럼 톡 쏘는 맛이 있었다. 차유진은 이 표현을 이해하려 다른 팀원들을 세 시간은 붙들고 늘어졌고 그렇게 소요한 시간을 보상하듯 여기저기 써먹었다. 

  그래. 테스타는 아주 멋진 팀이었다. 그들은 유능하면서도 온정적이었고 그의 말과 행동에도 크게 선입견을 가지지 않았다. 차유진은 항상 그 자신을 귀엽다기보다 멋지다고 생각했으나 귀여움 받는 막내 포지션으로 얻을 수 있는 약간의 이득은 거절하지 않았다. 새로운 ‘형들’과 친해지는 과정을 그는 마음껏 즐겼고, 유닛 편성에서의 약간의 사심을 제하고도 차유진이 김래빈을 굳이 룸메이트로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 김래빈과 공간을 공유하는 건 꽤 간만의 일이다. 

  같은 방을 고른 통에 서로 나가라 싸우면서도 차유진은 결국 그가 김래빈과 같은 방을 쓰게 될 줄 알았다. 음악 취향이야 전 소속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그들은 본래도 취향이 꽤 겹쳤다. 어떤 면으론 좋은 일이다. 그와 김래빈은 생활패턴이 비슷했으니 당분간은 새벽에 ‘형, 자요?’하며 룸메이트의 침대를 급습하는 일도 없을 터였다. 김래빈이 작곡에 뼈를 갈아넣을 때만 아니라면. 

  우습게도 김래빈은 흥미로운 갭으로 가득한 사람인 것 치고 정작 창작활동 만큼은 전형적인 예술가의 선입관에 들어맞는 행동 양식을 보였다. 떠오르면 바로 메모를 해야 했고, 작업 시간으로 낮보다는 밤을 선호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야행성이라는 의미였다. 물론 작업할 때 건드리는 건 좀 위험했지만 그거야 괜찮았다. 그는 김래빈의 선을 알았다. 그리고 김래빈의 작업 동안 견뎌야 하는 심심함 정도는 충분히 참아낼 수 있었다. 

  ‘그야 그가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내는 음악이 훨씬 더 흥미로운 걸.’

  물론 김래빈이 없어도 놀자고 찔러볼 형들이 이제는 많기도 했다. 차유진은 히죽 웃었다.

  그는 팔에 머리를 괸 채 방을 쭉 훑어보았다. 여기저기 포스터들이 붙어있었다. 2인 1실이라고 해도, 인지도를 얻은 아이돌의 숙소라 그런지 방이 퍽 넓었다. 연습생 시절에는 이것보다 좁은 방에 여럿이 묵었다. 그와 김래빈은 같은 이층 침대를 썼는데, 김래빈은 위층 침대를 고집하는 차유진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보면서 선선히 윗층 자리를 넘겨주었다. 서로가 지금보다 더 요령이 없고 낯설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김래빈도 지금보다 본인의 ‘영감’을 주체를 못 해서, 곡이 생각나면 바로 메모라도 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종종 다른 연습생이 잠들고 난 후 이불을 뒤집어 써 가며 작업을 했다. 그럴 때면 이불 사이에서 새어나온 전자기기의 화면 불빛이 침대와 바짝 닿은 벽을 타고 은은하게 그의 침대까지 번져왔다. 

  ‘래빈, 잠 안해?’ 

  그 희미한 불빛을 보며 말을 걸면 집중한 김래빈은 잠시간 말이 없다가, 액정을 두드리는 소리가 멈춘 후에야 기계를 끄며 멋적어했다. 너의 숙면을 방해해서 큰 실례를 끼쳤다고. 보통 새벽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불과 침대 바닥, 매트리스로 가로막힌 두 사람 사이에서도 벽을 타고 올라와 희미하게 번지던 불빛처럼, 이번엔 새벽의 무거운 공기를 따라 숨죽인 말들이 내려갔다. 서로에게 익숙치 않은 언어로 똑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지금은 그렇게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작업할 필요가 없지.’

  래빈이라고 부르던 것이 김래빈이 되고도 한참이 지났다. 전 소속사와는 달리 여기선 팀원들의 지지가 날개처럼 그의 친구를 받쳐주고 있었다. 차유진은 당연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한 실력이었다. 귀가 있다면 알 수 있었다. 김래빈은 이제 더 좋은 여건에서 작업할 수 있었다. 그가 관여하는 영역이 대폭 늘어나면서 김래빈은 한동안 작업을 위한 충분한 전자기기들을 갖추는 데 신경을 쏟았고, 그 결과가 저 작업 책상이었다. 제법 늘어난 전자기기들은 김래빈만의 질서를 갖추어 책상 위 공간을 차지했다. 차유진은 그의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가끔 이해하고 싶은 것처럼 그 배치를 뜯어보곤 했다.

  “Hmm~” 

  그 사이에 뭔가 배열이 바뀐 것 같기도 하고. 차유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전자기기의 면면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방문이 덜컥, 하고 열렸다. 파자마를 반듯하게 갖춰입은 김래빈이었다. 

  “이제 네가 씻을 순번, 잠깐, 차유진. 그 옷은 그렇게 입고 누우면 원단 특성상 주름이 잡히기 쉬워. 저번에 분명 그 옷을 아낀다고 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눕다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김없이 엄숙한 잔소리였다.

  “김래빈은 옷 아낄 때 안 입어?  중요한 건 많이 입는 거야. 소중하게 걸어놓고 안 입으면 좋아하는 옷도 의미 없어!”

  차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그의 친구를 좋아했지만, 종종 지나치게 원칙적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아낀다는 말은 오래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내포해. 그리고 오래 입으려면 옷이 손상되지 않게 할 필요가 있어. 항상 입는 것과 함부로 입는 건 달라! 넌 지금 옷을 함부로 입고 있어! “

  결국엔 또 티격태격이었다. 심지어 단둘이 룸메이트였던 탓에 지금은 평소 그들의 말싸움을 익숙하게 봉합하던 류청우나 박문대도 없었다. 그래도 차유진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에) 그가 김래빈을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아, 소독약 바를 시간이다.”

  “Pierce? 또? 김래빈 그거 어제도 했어.”

  “또라니..! 이건 매일 꾸준히 관리하는 게 중요한 거야.”

  그의 생각엔, 어쨌든,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여기저기로 주제가 튀다가 어느샌가 별 거 아닌 것처럼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지금처럼. 

  “이제 귀 몇 개 뚫었어? 두 개? 세 개?”

  “이번 활동기에 추가된 건 두 개야. 왼쪽 하나, 오른쪽 하나.”

  이제 왼쪽에도 아웃컨츠로부터 시작해서 귓바퀴를 감아 도는 체인 장식을 할 수 있다느니, 무대 모니터링을 해봤는데 핀라이트를 넣었을 때 도금 광택이 어떠니 하는 이야기는 차유진은 잘 모른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 활동에서도 차유진은 귀를 뚫지 않았다. 스타일링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귀찌로 만족해야 했다. 대신 차유진은 그의 옷소매를 내주었다. 팔을 강하게 움직일 때마다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또 팔꿈치부터 어깨까지 길게 이어진 사슬들이 잘랑거리는 소리는 종종 인이어를 넘어 반주와 섞여들었다. 

  그가 귀를 뚫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장신구는 종류를 불문하고 움직일 때 좀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이다. 아물때까지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차유진은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았다. 제 얼굴이야 장식 없이 그 오롯이로도 근사하기도 했고. 그러나 김래빈은 귀찮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다. 그에겐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다. 김래빈에게는 아마 무대에서 원하는 만큼의 장식이 혼몽하게 잘랑거리는 것이 더 중요할 테다. 무대를 구상하는 김래빈은 그 스스로조차 무대를 구성하고 빛내는 하나의 요소로서만 간주한다. 자기 자신조차 때로는 객관화하는 철저함과 완벽에의 지향 앞에서 스스로의 귀찮음은 고려해야 할 우선순위에 들지 않았다. 그건 그가 누구를 대하든 사람을 어떤 목적이 아니라 오롯이 하나의 사람으로서 대하는 것과는 별개의 부분이다. 프로로서의 김래빈이다. 

  하기야, 그는 원래도 해야 하는 일과 메뉴얼이 주어지면 기본적으로 성실하게 소화해내는 성격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입으로는 장신구가 빛을 받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효과에 대해 주절거리면서도 손으로는 익숙하게 새로 뚫린 곳을 소독한다. 데뷔 초부터 꾸준히 반복하면서 그는 능숙해질 대로 능숙해졌다. 거울을 앞에 두고 있다고 해도 귀 뒷편은 잘 보이지 않을텐데도 약을 묻힌 면봉은 꼭 알맞은 자리를 찾아갔다. 한 두 번 정도, 차유진은 도움 필요해? 하고 물었지만 그가 보기에도 보이는 저보다도 안 보이는 김래빈이 나았다. 

  차유진은 그가 처음으로 귀를 뚫을 때도 함께 있었다. 그는 한국에 별 연고가 없었고 데뷔 전 공백기에는 자연스럽게 김래빈을 따라다녔다. 김래빈은 처음 귀를 뚫을 때에는 좀 긴장했던 것도 같은데, 한 번 뚫어보고 별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자 그 다음부턴 마치 주사를 맞듯 잠깐 눈만 한 번 감고 말았다. 무딘 신경줄이었다. 저번 무대에서도 길어진 머리카락이 체인에 끼었는데, 스타일링 팀 막내누나가 황급히 떼어주려 달려오는 사이 김래빈은 무심하게 끼여서 꼬인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잡더니 그대로 뚝 끊버렸다. 오히려 제 앞까지 달려온 황망한 얼굴에 놀라 혹시 제가 이 머리카락을 마음대로 뜯어내 버려서 머리를 다듬는 데 문제가 생기냐 묻기나 했지. 김래빈은 그의 인상에 익숙하지 않은 그 신입이 제멋대로에 까다롭고 성격 나쁜 아티스트를 상상하고 지레 겁먹어 달려왔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김래빈 바보.’

  김래빈은 제 위치를 모른다. 정확히는 그 위치를 악의적인 의도로 휘두르는 법을 몰랐다. 김래빈에겐 할 수 있는 것보단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우선이다. 다른 연습생들이 차유진을 질시하고 견제할 때 김래빈은 차유진에게 춤을 배우며 제가 만들고 싶은 무대나 상상했을 것이다. 물론 그때부터도 김래빈은 차유진의 말이나 행동에 태클을 걸곤 했지만 걱정과 타박의 어드메쯤에 있는 그 잔소리들은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가 종종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 혹은 단어를 잘못 사용할 때 이상한 승리감에 차 그저 웃기만 했던 누군가들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물론 기분 나쁘지 않다는 말이 귀찮지 않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피어스 오래 한 사람들 자국 잘 안 없어진다. 김래빈 이제 아주 오랫동안 귀에 구멍 뚫린 채 살아.”

  “? …그게 무슨 문제라도?”

  한국의 문화는 조금 갑갑한 부분이 있다. 20년, 30년 뒤, 아주 먼 미래에 혹시 아이돌을 하지 않을 때가 온다면 사회 통념상 예의바르지 않은 것들을 신경쓰는 김래빈은 저 흔적들을 신경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쩌면 20년, 30년 뒤에도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일이며, 지금 고민해야 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차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It looks like constellation.”

  사슬도, 장식도, 두꺼운 관도 다 뗀 채 고스란히 드러난 귀에 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작은 볼만 점점이 남은 그 모양새는 별자리를 닮았다. 김래빈은 낯선 단어에 잠깐 눈썹을 들어올렸지만 피부 위에 스킨케어 화장품을 덧바르는 손길은 평연했다. 차유진이 그의 앞에서 부연 설명 없이 낯선 영어를 쓸 때에는 굳이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걸 다년간의 경험으로 알기 때문일 터다. 그래서 차유진은 방해 없이 그 작은 별자리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김래빈이 차유진, 씻고 자,라며 등을 내리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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