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캐러를 살짝 곁들인 막내즈 논컾페어. 전반적으로 잔잔하게 소설 미리니름이 들어갑니다.
- 차유진과 김래빈의 연습생 시절은…. 날조입니다. 익숙한 날조의 맛을 즐겨주세요 ㅇㅅ<)r
흡족하게 활동을 끝마치고 난 뒤 휴식기의 테스타 숙소는 대체로 평화롭다. 어디서 얻었는지 모를 연줄로 예능 개인 출연을 제안받아 촬영을 나간 이세진을 제외하고는 각자 여기저기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유를 즐기는 한가로운 오후였다. 서로 투닥거리는 막내들의 말소리마저 그저 라디오를 틀어놓은 것처럼 정겨웠다. 멤버들이 그들의 투닥거림을 배경음 취급한지도 꽤 오래 되었다. 그 선아현마저 그들을 말리거나 싸울까 걱정하는 대신 유진이랑 래빈이는 오늘도 사이가 좋네, 하는 온화한 눈빛을 보낼 만큼.
"쟤들은 저렇게 맨날 싸우는 게 힘들지도 않은가봐..."
말싸움은 커녕 누군가와 가벼운 긴장 상황에만 놓여도 곧잘 피로를 느끼곤 하는 배세진이 경이로운 생물 보듯 부엌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팬들을 위한 자체 컨텐츠에 대해 박문대와 대화를 나누다 대여할 수 있는 실내 체육시설을 찾아보고 있던 류청우가 노트북 화면에서 시선을 들었다. 소리가 흘러나오는 부엌 쪽을 마치 기색을 탐색하듯 지긋이 살펴보던 이 그룹의 리더는 이내 굳이 말리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린듯 픽 웃었다.
"음. 아마 자기들 나름대로는 노는 거 아닐까? 저러고 나면 오히려 더 쌩쌩해지기도 하고."
"저게 노는 거라고.....?"
배세진이 질린 표정을 하는 사이, 평화롭게 파우치에 수를 놓고 있던 선아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둘이 진짜로 싸우진 않으니까요. 치, 친해보여서 보기 좋기도, 하고... "
"좀 길어진다 싶으면 중간에 끼어들고 있긴 하지만 내 생각에도 그래. 데뷔 하고 나서 더 친해진 것 같기도 하고... 아주사 때는 저 정도는 아니었지?"
청우의 그 말에 그들 사이엔 잠깐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때 쟤들이랑 같은 팀 되어 본 적이 한 번밖에 없어서. 말을 흐린 배세진이 눈치를 보듯 눈을 도록 굴려 선아현 쪽을 바라보지만 선아현 역시 난처하게 웃을 뿐이다.
"저는 유진이랑은 하, 한번도....."
"그때도 조금은 그랬습니다. 지금보단 덜했지만요."
"응? 아, 아아.. 그랬구나....."
"응. 김래빈하고는 2차 때부터 계속 팀원이었는데, 차유진은 그때도 자주 놀러왔거든."
아마 친목 논란을 나름대로 신경쓴 거 아닐까요. 둘 다 상위권이었으니까. 결국에는 휴대폰을 토독 토독 두드리던 박문대까지 대화에 끼어들었다. 시선은 아직 액정에 둔 채로, 모니터링을 자주 했다고 태연하게 덧붙인 말은 덤이었다. 배세진은 모니터링이라는 말에 너는 참 한결같다, 하는 떨떠름한 시선을 던졌지만 잠시 뿐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청우가 동의한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동갑에 같은 소속사 출신이니까. 이미 친했어도 이상할 건 없지. 그리고 이젠 한 팀이니 서로 친하다고 문제될 것도 없고."
"예. 둘만 친하다면야 문제가 되겠지만... 둘이 서로를 잘 알고 있던 덕분에 도움을 받은 적도 있고요. "
"그치. 귀엽기도 하고?"
그 말에 그들 사이에서 약간의 웃음기를 담은 눈빛이 오간다. 김래빈과 차유진은 그들보다 나이로도 막내였지만, 둘 다 서로 다른 느낌으로 붙임성이 좋았다. 제 역할을 잘 하는 타입에 말썽을 부린 일도 거의 없으니 형들이 막내들을 귀여워하는 것도 퍽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원래도 무른 청우나 아현이는 물론, 은근히 낯을 가리는 배세진이나 인간관계에 담백한 편인 박문대마저도 막내들에게는 비교적 느슨한 편일 만큼.
"뭐. 내가 보기에 둘은 좀 비슷한 부분도 있으니까."
그러니 배세진은, 딱히 부정적인 의미로 그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차유진과의 우유 쟁탈전에서 진 탓에 우유 대신 두유를 손에 들고 형들을 찾아 거실로 총총 다가오던 김래빈이 그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진 것이 결코 그의 탓이 아니라는 뜻이다.
"헉! 혹시 그 둘이라는 게 저와 차유진을 가리키는 게 맞습니까? 차유진과 제가 비슷하다니, 혹시 제가 요새 차유진처럼 뻔뻔하게 무례를 저지르거나 막무가내에 제멋대로 자기 주장을 밀고 나갔습니까?!?? 만약 형들이 그렇게 느끼셨다면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당황해서 손을 내저으며 무언가를 해명하려던 배세진의 말은, 부엌에서부터 공간을 왕왕 울리는 차유진의 목소리에 파묻혔다. 나 무례하지 않아, 김래빈 이상한 잔소리 해! 익숙한 개판. 2차전의 시작이었다.
류청우가 가진 리더로서의 자질은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그와 눈빛을 주고받은 박문대가 자잘한 주전부리로 차유진의 주의를 돌려 입을 막는 사이 그는 삼천포로 뻗어나가려는 김래빈의 생각을 익숙하게 끊고는 능숙하게 형들 사이 소파에 앉히는 것으로 둘 사이의 2차전을 원천 봉쇄했다. 한번 흐름이 끊기면 굳이 사소한 일을 끄집어내어 다시 다투지 않는 둘을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이미 비슷한 일을 몇 십번이고 해본 자의 여유였다.
"세진이는 그냥 너희 둘이 친해 보여서 한 말이야. 비슷하다는 건, 가령.. 둘이 음악 취향도 비슷하고. 그치?"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본질적인 부분이었다. 예컨데 컨셉을 정할 때의 거침없는 추진력이나, 사람과 소통하는 방식에서의 묘한 박력이라던가..... 그러나 배세진이 눈으로 보낸 마음의 소리는 김래빈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상대가 김래빈이라 배세진 역시 기대도 하지 않았다. 뭐, 어쨌든 오해만 풀린다면.....
"아, 그런 말씀이셨군요! 제가 평소 형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다 보니 혹시 제가 최근 마음을 지나치게 놓아서 형들께 방자한 행실을 한 게 아닐까 고민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그래도 혹시 제가 만약 그렇다면 언제든 기탄없이 말씀 부탁드립니다! "
"아니, 넌 방자한 행실을 한 적이 없대도......."
다만 배세진은, 그 짧은 시간동안 기가 쪽 빨린 모양이었다. 내가 다시는 쟤들 사이에 끼어드나 봐라, 하는 회한을 담은 눈빛이 그랬고 소파의 등받이에서 팔걸이로 점점 흐늘흐늘 늘어지는 등의 모양새가 그랬다. 김래빈이 세진이 형 죽였어. 장난스럽게 키득대던 차유진이 소파 등받이에 걸터앉듯 몸을 기댔다.
"취향 같은 거 항상 좋은 거 아니에요! 김래빈이랑 같은 거 원하면 싸워요. 지난 번 방처럼?"
"바보야, 그럴 때는 서로간의 배려와 양보를 통해서 최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게 올바른 방식이야. 싸우는 게 아니라."
차유진의 말에, 희소성이 있는 대상이라면 그럴 수 있지 하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던 문대가 이어지는 김래빈의 말에 잠깐 멈칫한다. 배려와 양보, 좋은 말이지. 티벳여우 표정으로 어색하게 흘러나온 다음 말에는 영혼이 없다. 박문대 역시 필요하다면 물 밑으로 기회를 노려 싸우고 뺏는 데 익숙한 탓이다. 물론 이상론이 항상 그렇듯 김래빈의 말에는 헛점이 있고, 차유진은 그걸 놓칠 만큼 눈치 없지 않았다. 심지어 차유진의 고향은 자본주의의 아성, 기회와 경쟁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 미국이다. 작게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취향 비슷한 사람, 있으면, 마, 많이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특히 그, 말을 잘 못 해도 비슷한 취향이면 잘 통하는 것, 같고... 내가 유학 때, 비, 비슷한 일이 있어서.... "
"아. 그렇네. 유진이 지금은 말 많이 늘었지만, 처음에는 대화가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그쯤에서 슬그머니 중재해보려는 선아현의 말을 류청우가 받았다. 여기서 더 가면 양보와 배려를 주제로 3차전이 일어날 것을 직감한 탓이다. 차유진의 코웃음에 비쭉 올라가려던 김래빈의 눈썹이 둘의 말을 듣고는 천천히 제자리를 찾는다. 좋은 신호였다. 박문대가 주방에서 과일칩을 한 소쿠리 담아와 그들 사이에 내려놓았다. 암묵적인 휴전권고였다.
"예. 그렇습니다. 떠올려보니 차유진과 처음으로 제대로 대화한 것도 음악 장르에 대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맞아요! 김래빈 영어 못 해요! 영어는 음악만 알아요!"
차유진이 아작아작 과일칩을 씹고, 안심한 선아현이 다시 바늘을 놀린다. 한풀 가라앉은 평화로운 공기 속에서 예전 일을 풀어놓는 김래빈의 목소리와 중간중간 사설을 넣는 차유진의 목소리가 도란도란 울린다. 이건 팬들이 들으면 좋아하실 것 같은데. 박문대는 습관적으로 팬들의 니즈를 분석했다 곧 그만두었다. 필요하다면 W라이브 앱에서라도 나중에 풀면 될 일이었다. 괜히 미리 던져주었다 사이가 그렇게 나쁠 일 없었던 차유진과 김래빈의 개인 팬들 사이에서 갈등을 부추기는 까들이 괜히 물고 늘어지면 골치만 아팠다.
"나 한국 단어 잘 모르니까 김래빈 말 따라했어요. 그때마다 김래빈 그거 아니라고 했어요!"
그래. 이런 부분이.
"맥락이 있으니까 같은 단어라도 아무 데나 함부로 갖다 붙이면 안된다고 했잖아! ...예. 아무튼, 차유진에게 알려주다보니 저 또한 생각보다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모른 채 사용하는 경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평소 사전을 지참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어휘력을 늘리고 단어를 가다듬어 정련된 가사를 쓸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긴 합니다만..."
"단어 중요하지 않아요! 몰라도 통할 때 있어요! 김래빈도 그거 알아요."
"내가?"
자신을 가리키며 눈을 깜박이던 김래빈이 문득 아, 하고 얼빠진 소리를 냈다. 차유진이 얄미울 때조차 맞는 말에는 반박을 하지 못하는 특유의 성미가 전투력을 급격하게 떨어뜨렸다. 그렇지. 김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연습생으로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별 거 아닌 이야기다.
차유진은 한글을 모른다. 김래빈은 영어를 몰랐다. 조부모의 손에 강원도 시골에서 자란 김래빈에게 사교육은 남의 이야기였다. 그러니 자연스레, 학교에서 가르치는 영어가 그가 배운 외국어의 전부였다. 그는 간혹 영어로 된 노래를 들었지만 그 때의 영어는 언어라기보다 음악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유튜브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곡 프로그램을 다루는 동영상을 볼 때, 김래빈의 감각은 그들의 말 대신 화면에서 움직이는 프로그램과 마우스 커서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니 차유진과도 말이 통하지 않을 수밖에. 처음 만난 차유진은 그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생명체에 가까웠다. 그때도 한결같이 남들의 눈치는 보지 않고, 게다가 에너지는 넘치는. 실생활용 외국어를 배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차유진 역시 인사, 감사, 사과, 그리고 호오의 표현을 가장 먼저 외웠다. 춤과 음악은 좋고, 점호랑 트레이너가 머리를 쓰다듬는 건 싫고. 그래도 김래빈은 차유진에게 좋다는 말을 먼저 들었다. 그가 무심코 전자키보드로 찍은 코드 덕이었다.
'이거?'
'Yes! Swing?'
'어? 아아..아....'
C#으로 시작하는 코드 두세 개. 레트로 느낌을 살리고 싶은 건 맞았지만 특정 장르를 의도하고 누른 건 아니었다. 다만 이어지는 코드는 반사적으로 차유진의 움직임에 맞춰 찍은 게 맞다. 따-다, 따-다, 따-다다. 밀고 당기고, 장르의 어원 그대로 살랑살랑 흔들리는 어깨며 팔과 정반대로 과감하게 쿵, 하고 박자에 맞춰 내리찍는 스텝. 김래빈도 그때는 지금보다 어려서, 머리속을 통통 울리는 경쾌한 멜로디를 아직 손이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박자를 쪼개서 음을 밀어넣던 것이, 점점 힘에 부치자 결국 김래빈은 쭉 글리산도로 음계를 끌어내리는 것으로 그 흐름을 끊어버렸다.
짝, 짝짝. 호쾌한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리듬을 타던 곡이 갑자기 끊겼는데도 차유진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 대신 털썩 주저앉아 제 의자를 김래빈을 향해 휙 돌리고, 시선이 마주치자 웃는 얼굴 그대로 외쳤다.
'좋아!'
짧고 단순해서 폭력적이리만큼 강렬한 감상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서, 그럼에도 어딘가 짜릿해서 김래빈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꾹 쥐었다. 기묘한 경험이었다. 모국어를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오히려 그런 본질적인 소통을 해 본 기억이 없었다. 음악을 통해 넘나드는 왜곡되지 않은 의도와 감정들. 서양 음계를 기준으로 고작 7개, CDEFGAB, 반음을 포함해도 12개밖에 안 되는 기호가 알파벳 26자와 한글 자모 24자의 경계를 뛰어넘어 그들 사이에 있었다.
그 12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달라도 좋았다. 아니 달라서 더 좋은 걸지도 몰랐다. 비트와 멜로디로 구성된 하나의 세계가 상대에게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해석되었을 때의 충격이 주는 두근거림을 김래빈은 알았다. 그가 무언가를 만들어가면 차유진이 저만의 방식으로 부수고 재조립해 피워내고, 그 과정에서 받은 느낌과 해석을 덧붙여 서서히 무언가 완성되어 가던, 그 성취감.
"아, 나, 나도 그런 거 느낄 때 있어. 춤 출 때도 조금 그랬고, 우리 콘서트 할, 때라던가.... "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새 바늘을 내려놓은 선아현이 주섬주섬 자신의 예시를 늘어놓았다. 은근히 감명받은 얼굴이었다. 우리 콘서트, 에 이르러서는 거기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김래빈의 말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곰곰히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슬쩍 덧붙인 것이다.
"그러고보면 예의범절이라던가 가치관의 기준에서의 차이로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느꼈던 적을 제외하면, 차유진이 말을 잘 하지 못했을 때에도 뜻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차유진은 표정이나 제스쳐가 크고 분명하고... 다소 문제가 될 때도 있지만, 일단은 숨김이 없으니까요."
"맞아요! 나는 솔직한 사람이니까~ 김래빈 예전에 표정 알기 어려웠어요. 매일 눈 이렇게 뜨고."
차유진의 손 끝이 눈썹 끝을 쭉 끌어올린다. 그 흉내에 여기저기서 피식거리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김래빈이야 여기서 화를 내야 할 지 아니면 다들 웃고 있으니 넘어가야 할지 아리송한 얼굴이었지만.
"지금도 표정은 별로 안 바뀌었어요. 그래도 지금은 알아요. 김래빈 표정 많아요. 그러니까 내가 맞아요. 말 중요하지 않아요."
아니, 차유진. 그건 아니지. 김래빈이 정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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