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11월 10일 / 붕어빵 사먹는 막내들
김래빈이 포장마차를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서울 시내에서는 은근히 붕어빵 파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기에 그는 저도 모르게 반가운 얼굴을 했다. 연습생들 역시 아이돌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몸 관리는 필수적이었지만 아무래도 아이돌만큼 빡빡하게 잡지는 않았다. 그는 옆을 돌아보았다. 영문 모르고 길가에 함께 멈춰섰던 차유진이 어리둥절하게 눈을 마주했다.
"차유진, 너 붕어빵 좋아해?"
"What? 부어..?“
"아, 그렇구나. 네가 붕어빵을 모르리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어. 그러니까 붕어빵은 일종의 간식인데, 반죽 안에 팥소를 넣고 기계로 구워낸 거야. 주로 겨울에 많이 팔아."
김래빈으로선 최선의 설명이었지만 차유진이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좀 복잡했다.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차유진은 되묻는 대신 가장 중요한 것만 확인하기로 했다.
"맛있어?"
조금 망설이던 김래빈은 나름대로 최선의 답변을 했다. 응. 맛있다는 주관적인 평가기 때문에 내가 확답을 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싫어하는 사람을 보지 못한 것 같아. 뒤의 말은 다 걸러듣고 김래빈의 '응'만 재차 확인한 차유진은 경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 먹어!"
"그래..!!"
동행인의 동의도 받았겠다, 신나게 포장마차로 달려간 김래빈은 붕어빵의 가격을 확인했다. 5마리 2천원. 가격은 문제없었다. 문제는 갯수였다. 두명이서 나눠먹기에도, 세 명이서 나눠먹기에도 애매하게 떨어지는 갯수, 다섯. 그는 고민에 빠졌다. 10마리는 아무래도 너무 많았다. 역시 제가 두 개를 먹고 차유진에게 세 개를 양보하는 게 좋겠지. 그가 고민하는 동안 옆에서 기웃거리던 차유진이 그를 쿡 찔렀다.
"김래빈 돈 없어?"
"아니, 그건 아니고. 5마리를 어떻게 나눠먹을지 고민하고 있었어."
"왜? 반 잘라."
"그래도 되지만... 머리랑 꼬리 부분의 팥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맛이 미묘하게 다르거든."
키가 멀대같은 학생들이 제 앞에서 두런거리는 소리를 어떻게 들은 건지, 허허 하고 웃은 주인이 둘의 고민을 끊었다. 아저씨가 서비스로 하나 더 줄게. 차유진이 Wow하고 환호를 내지르는 사이 김래빈은 옆에서 꾸벅꾸벅 허리를 숙이고는 차유진의 머리도 냅다 눌러 인사를 시켰다. 결국 김래빈의 품에는 붕어빵 6마리가 든 봉투가 안겼다.
차유진은 포장마차를 빠져나가자마자 손을 뻗어 붕어빵을 채갔다. 어차피 나눠먹을 생각이라 차유진이 가져간 건 문제가 없었지만 조금 식히고 줄 생각이었던 김래빈은 깜짝 놀라 차유진의 손을 살폈다.
"차유진, 안 뜨거워?"
이미 머리를 반쯤 입에 넣던 차유진은 새는 발음으로 뜨겁다며 울상을 했지만 붕어빵에 입김을 후후 불기나 했지 그걸 들고 있는 손은 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김래빈은 질문을 바꾸었다.
"손 말이야."
"손? It's OK. 괜찮아!"
뜨겁다 하면서도 기어이 붕어빵 하나를 해치운 차유진이 양 손을 들어 김래빈에게 내밀더니 아차, 하고 붕어빵 반죽 부스러기를 탈탈 털고 다시 내밀었다. 그는 차유진의 손을 잡아 이리저리 들여다보았다. 발개진 데가 없는지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그는 문득 차유진의 손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굳은살과 흉터의 흔적을 눈치챘다. 평소에는 손을 자세히 볼 일이 없다보니 알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김래빈의 시선이 어디에 가 있는지를 금방 눈치챈 차유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 Football 해. 손 금방 다쳐."
김래빈은 차유진의 서툰 한국어를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차유진은 금방 다쳤다고 했지만 그 손에 있던 굳은살과 흉터는 꽤 오래 전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되물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손을 잘, 자주, 그러니까 많이... 음..... 다치기 쉽고 여러 번 다쳤다는 이야기지? 금방이라는 표현은 막, 그러니까 방금... 다친지 얼마 안 되었다는 뜻이야."
"Whatever... 한국말 어려워!"
두마리째의 물고기를 입에 문 차유진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휙휙 저었다. 그러더니 대뜸 붕어빵 하나를 그의 입가로 내밀었다. 제게 들이밀어지는 붕어빵의 기세에 놀라 그는 반사적으로 그걸 받아들었다. 약간은 식었지만 아직도 만지기엔 공히 뜨거워서, 그는 조심스레 봉지의 겉면을 찢어 붕어빵을 감쌌다. 그는 새삼스레 제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굳은살도 흉터도 없는, 차유진의 것과 비교하자면 확실하게 고운 손이었다.
김래빈은 다시 차유진의 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번 눈에 들어오자 이제는 가까이서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 흉과 굳은살을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차유진의 것보다 훨씬 더 울퉁불퉁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조부모의 손을 떠올렸다. 비록 그만큼의 세월은 아니었겠지만 차유진 역시 손 모양이 그렇게 될 만큼 무언가를 아주 열심히, 어쩌면 꽤 오래 했겠지.
'하기야. 차유진은 지금도 댄스를 비롯한 퍼포먼스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어.'
어쩐지 차유진에게 조금 진 느낌이라서, 그는 말없이 붕어빵을 우물거렸다. 둘은 다른 연습생과 동떨어져 둘이만 연습을 해야 할 때가 많았다. 다른 연습생들의 대부분은 좀 더 어릴 적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기에 이 나이쯤 되면 노래든 춤이든 기본기를 갖춘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길거리 캐스팅으로 갑자기 들어온 차유진과 프로듀서를 지망하다 적을 옮기게 된 김래빈은 해당 사항이 없었고, 진도가 맞지 않아 둘만 보충연습을 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는 알았다. 차유진은 정말로 열심히 하고, 그 노력을 상회하는 재능 역시 갖췄다는 걸.
다행이 김래빈은 오래 비관하지 않았다. 차유진만큼 빠르고 눈에 띄진 않더라도 저 역시 하루하루 경험을 쌓아나가고 있었다. 연습화를 신어도 뛰고 움직이다 보면 발바닥의 넓은 면적과 발볼부터 조금씩 살이 굳어 단단해져갔다. 아주 오래 발을 굴렀던 날에는 발바닥 전체가 욱신거리거나 화끈거리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제 발도 언젠가 차유진의 손처럼 여기저기 굳고 흉터가 남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때가 되면 차유진의 발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그는 두 마리째의 붕어빵을 입에 넣으며 언젠가 나란히 설 한 쌍의 단단하고 울퉁불퉁할 발을 상상했다. 그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꼬리마저 입 안에 들어갔을 때에 이르러서는 동료가 좋은 성취를 보인다면 그것을 귀감으로 삼아 더욱 정진하면 된다는 건설적인 결론까지 내렸다. 그는 제 몫의 붕어빵 3개를 다 먹고도 봉지 안에 아직 남아있는 붕어빵을 힐긋거리는 차유진에게 붕어빵 한 마리를 반으로 쪼개 건네었다.
"너는 워낙 움직임이 많으니 반 개 정도는 더 먹어도 될 거야."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돼. 엄중히 덧붙여도 이미 붕어빵 반 마리로 충분히 행복해진 차유진은 히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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