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도전 2(2023년)


11월 14일-11월 15일 / 블랙홀

콘서트에서 무대를 하나 하게 되었다. 차유진과 김래빈, 둘만. 막내들의 유닛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아주 멀게는 전 소속사에서의 월말평가때부터 가까이로는 투어 중 팬들을 위한 컨텐츠로 마련한 즉석 무대까지, 둘이 무대를 꾸려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콘서트라는 명목이 달렸으니 김래빈이야 조금 더 중압감을 느끼겠지만 테스타도 연차가 몇 년이던가. 죽어도 양보 안 할 것처럼 서로의 의견을 밀어붙이다가도 어느 순간 뭐 하나씩 입에 물고 머리 맞댄 채 키득이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둘의 오랜 습관이었고, 그러니 작업은 대체로 순풍에 돛 단 배처럼 흘러갔다.

편곡도 안무도 나왔고 남은 건 연습뿐이다. 둘의 유닛 무대 말고도 꾸려야 하는 무대가 많아 시간을 많이 빼기는 어려웠지만 하나는 워커홀릭에 하나는 무대와 콘서트라면 신나서 날뛰는 종류의 사람이라 제법 강행군인 일정에도 불만이 없었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문제 없지?"

재생버튼에 손을 올리고 확인하려는듯 그를 바라보는 김래빈에게 차유진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연습실에는 여기저기 카메라가 붙었다. 지금부터 촬영하는 영상은 그들의 모니터링 자료로도, 콘서트에서 틀 메이킹 필름으로도 사용될 거라 둘은 처음부터 끝까지 멈춤 없이, 노래부터 동선까지 전부 맞춘 채로 연습하는 장면을 찍을 예정이었다. 카메라는 이제 더이상 그들에 낯선 광경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들은 수많은 렌즈들 가운데서도 평연했다. 나란히 선 채 그들은 준비자세를 취했다.

김래빈이 음악을 틀었다. 비트가 울리기 시작했을 때 몸은 벌써 움직임을 준비하고 긴장하고 있었다. 고개가 까닥였다. 셋, 둘, 하나. 소리없는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몸이 절로 튀어나갔다. 벌써 저쪽 끝까지 간 김래빈을 보며 그는 벌스를 읊었다. 무대를 넓게 쓰는 걸 좋아하는 건 김래빈보다는 그였지만 김래빈 역시 필요할 때는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데 망설임이 없다. 자유롭게, 그러다가도 시선을 끌어야 할때는 각을 딱 맞추어. 연습실의 바닥을 연습화가 스치며 나는 소리가 인이어를 끼지 않은 귀에 그대로 들려왔다. 쿵 하는 소리가 딱 맞아 떨어지면 다시 기분이 고조되었다. 랩을 얹기 전 숨을 가다듬는 그 찰나의 시간도 즐거워 눈을 휘다가 그는 김래빈과 눈을 마주쳤다.

'Hmmm.....?'

그의 눈이 문득 가늘어졌다. 김래빈은 그를 보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익숙한 시선이었다. 상대는 지금 이 퍼포먼스를 '가늠'하고 있었다. 재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퍼포머이자 동시에 프로듀서로서. 차유진은 그 차이를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역시 한때는 관찰하는 이였기에 더욱. 쿼터백은 경기에 뛰면서 동시에 경기를 읽어야 하는 자였다. 그게 벌써 몇년 전의 일이라도 몸에 배인 감각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프로듀서 김래빈과도 꽤 오래 함께했기에 김래빈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는 잘 알았다.

그러나 이해와 용납은 별개의 문제이며, 차유진은 그걸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관찰은 객관화를 동반하고 객관화란 곧 거리두기지. 평가든 피드백이든 어차피 영상을 찍고 있으니 나중에 모니터링을 하면서 점검해도 되는 일이다. 그는 김래빈이 그의 궤도를 빠져나가 그 바깥에서 감히 저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어딜. 그의 입꼬리가 씨익, 호선을 그렸다. 비트에 맞추어 손가락을 딱딱 부딪히자 약속되지 않은 제스쳐에 김래빈의 신경이 그에게로 쏠렸다. 그 집중의 순간을 잡아 손가락을 까닥이고 고개를 기울여 도발하면 김래빈의 눈에 심지가 바짝 섰다.

제게 쏠리는 화르륵 불 붙은 눈. 그 선명한 시선에 쾌재를 부르며 뒤로 한 걸음, 두 걸음 그가 뒷걸음질칠 때마다 미리 약속된 동선을 따라 김래빈이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제게 몰입한 김래빈의 시선이 기민하게 움직인다. 그가 흘리는 순간순간의 변화들을 포착하고, 감탄하고, 소화한다. 돌아오는 건 잡아먹을듯이 맞서오는 기세, 그에게 지지 않겠다는 패기로 가득한 시선, 그 스스로가 구상했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차유진이 던졌던 변화구조차 제 퍼포먼스 안으로 다시 비틀어 소화해내는 기민한 몰입.

차유진은 다시 웃었다. 제가 원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우리가 하려던 건 프리스타일이 아니었노라고 떽떽거리는 잔소리를 나중에 두 시간은 듣는대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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