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유진, 잠깐만."
탁. 작은 마찰음이 식탁을 가로질렀다. 하? 차유진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박문대의 젓가락이 생선구이를 향하던 그의 젓가락을 가로막고 있었다. 차라리 먹을 걸 애초부터 주지 않았으면 않았지 먹던 중에 방해하는 박문대는 생소했던 탓에, 옆에서 김래빈 역시 얼떨결에 수저질을 멈췄다. 막내들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하나씩 떴다.
"나 이거 먹지 마요? 또 익는 거 덜 했어요?"
어리둥절한 얼굴의 차유진이 미국에서의 일을 떠올려 물었지만 박문대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기다려, 하면서 다시 차유진의 젓가락을 접시 밖으로 물리는 것이다.
'어쩐지 김래빈까지 묘하게 손을 못 댄다 했지.'
박문대는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껍질에 반질반질 기름이 돌 정도로 바짝 잘 구워진 꽁치구이에는 잘못이 없었다. 다만 꽁치는, 흔히 먹는 생선들 중에선 비교적 잔가시가 많은 생선이다. 젓가락질이 서툰 차유진은 뼈를 바르기가 쉽지 않을. 김래빈도 집에서는 어지간히 귀여움받은 막내였는지 큰뼈는 몰라도 잔가시 부분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몇 번 젓가락을 대는가 싶더니, 아예 생선을 포기하고 다른 반찬을 집는다. 깨작거릴 바에야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이상한 곳에서 엄격한 밥상머리 예절이었다.
"그러다가 입 안 찔려."
차유진은, 보아하니 가시가 귀찮아도 먹고는 싶으니 아예 통째로 가져가 냅다 씹어먹으려 한 모양이었다. 그마저도 잘 떨어지지 않는 껍질과 엉겨 고전하고 있던 것을 박문대가 저지한 것이 방금 전이다. 한 번 이상함을 눈치채고 나니 차유진이고 김래빈이고 생각하는 바가 빤했다.
"괜찮아요! 입 튼튼해요!"
"맞습니다. 차유진은 이도 뾰족하면서 뭐 먹을 때 입 베는 걸 한번도 못 봤습니다."
얼마 전 포도당 캔디를 녹여 먹다가 혀 어디를 베었다며 한동안 매운 걸 멀리하던 김래빈이 반쯤은 부러움이 섞인 어조로 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박문대는 고개를 저었다.
기다려. 단호한 어조와 함께 한 손에는 젓가락을, 다른 손에는 숫가락을 집어들더니 그대로 꽁치를 발라가기 시작한다. 등지느러미와 중앙 뼈 사이로 젓가락을 넣어 그대로 살을 죽 들어내더니, 지느러미에 붙어있는 잔가시를 같은 요령으로 한쪽으로 쭉 밀어낸다. 머리를 분리하고, 중앙뼈와 꼬리를 제거하고, 내장 쪽의 쓴 부위와 잔가시들을 죽죽 훑어내더니, 껍질의 기름지거나 비린부분까지 깔끔하게 떼어내 살코기만 남기는 솜씨가 일품이다.
"WOW.... 형 묘기 부려요!"
"형이 이렇게까지 해주시지 않아도 저희는 괜찮습니다. 이런 일로 형을 번거롭게 해드리다니...!"
막내들로부터 상반된 반응이 튀어나온다. 저러다 김래빈은 식탁에 머리 박겠네. 한숨쉬듯 픽 웃은 박문대가 김래빈이 대충 혹할만한 면죄부를 던진다. 너희는 아이돌이니까, 목에 가시걸려서 병원갈 일은 없어야지. 김래빈은 넘어갔다. 이런 일까지 잘 하시다니 과연 프로아이돌이십니다, 하는 말이 들려오는 착각이 일 만큼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에 존경심이 가득하다. 그 눈빛에, 박문대의 얼굴 역시 미미하게 누그러진다.
"형 멋져요! 나도 배울래요!"
"뭘 배우기까지 해. 하다 보면 는다."
"배워서 형 해줘요!"
"그렇습니다! 다음에는 저희가 해드리겠습니다!"
"나 말고, 나중에 너희보다 어린 애들한테 해줘. 조카라던가..."
"으음.... 그럼 고맙습니다 해요! 형 때문에 잘 먹어요"
"바보야, 그 땐 '덕분에'라고 하는 거야"
한층 편하게 생선을 먹을 수 있게 되니 막내들의 젓가락질이 분주하다. 그거 하나로 퍽 신났는지 텐션이 올라간 차유진과 김래빈의 만담 아닌 만담을 들으며 박문대는 대충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그냥 감사하다는 말이나 할 걸 그랬지.'
부모가 살아있을 때에는 류건우도 생선을 잘 바를 줄 모르는 어린애였다. 부모가 죽고 나서는 그런 어리광을 부릴 상대가 없었고, 혼자 밥을 챙겨 먹으며 먹을 수 있는 건 뭐든 악착같이 먹다 보면 생선 바르는 기술이야 자연스레 늘었다. 때론 생선 뼈에 붙은 약간의 살도 아까웠다. 생선은 생각보다 고가의 식재료다.
그래도 종종, 류건우 역시 잘 발려진 생선을 받았다. 몇 번 만난 적 없던 먼 친척과의 어색한 식사자리, 동아리의 대 선배, 졸업 후 찾아간 담임교사. 고마우면 너보다 어린 사람한테 되돌려주라던 말을 했던 건 누구였더라. 하루 버텨내기도 피곤한 삶을 살면서 기억은 많이 뭉그러졌지만 그래도 그 지쳤던 삶에도 중간중간 빛나는 선의가 있었다. 필사적으로 혼자서도 괜찮은 척 하던, 자존심을 세우던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 멋적을 만큼.
어쩌면 박문대를, 그러니까 큰달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도 그 이전에 자신에게 쏟아졌던 그 작은 호의들 때문이다.
"형도 많이 먹어요!"
제 쪽으로 생선 접시가 슥 밀린다. 어두육미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머리는 제가 발라드리겠습니다! 시끌벅적함을 타고 다시 반짝임이 돌아왔다.
생선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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