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10. 25~2022. 11. 02. 트위터에 짧게 남겼던 글을 백업 용도로 다듬어 정리함.
1.
인간의 애착은 종종 오묘한 데가 있다고, 김래빈은 제게 온 의뢰서를 읽으며 오래된 감상을 떠올렸다. 애착이란 무엇인가. 그건 단순히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와는 달랐다. 인간은 제 애착의 대상을 아끼고 돌볼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 대상과 소통하고 감정을 나눴다고 믿는다. 여기서 그 대상이 실제로 상호 소통이 가능한지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불, 인형, 가전제품, 그리고 안드로이드까지. 생물을 모방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많은 것들에 인간은 속절없이 정을 주고 그 대상이 자신의 옆에서 영속하기를 바란다.
김래빈은 그 애착 덕분에 먹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구형 안드로이드를 전문으로 수리하는 사람이었다. 구형 안드로이드란 생산이 중단되어 더이상 생산기업에서 A/S를 제공해주지 않거나 부품을 만들어주지 않는 안드로이드를 통칭했다. 구형 안드로이드가 생산될 시기에는 아직 생산체계가 규격화되지 않아 제조회사별로 각각 특징이 다른 데다, 현재의 안드로이드와 명령 체계, 회로, 부품 종류가 전혀 다른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러니 수리하기 위해서는 부품을 확보하는 것부터 관건이었다.
오로지 끈기 하나로 제게 들어온 의뢰를 반절 정도는 성공시킨다는 점에서, 그는 그럭저럭 실력 좋은 수리공으로 평가받았다. 나머지 반의 의뢰는 글쎄. 그조차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실패하는 의뢰의 한 반 정도는 아무리 노력해도 호환되는 부품을 찾을 수 없거나 만들 수 없는 경우였고, 나머지 반은 아무리 그라도 손댈 수 없는 안드로이드의 본질적인 중추 시스템과 관련된 문제였다.
'이건... 후자지.'
그는 그의 앞에 놓인, 정확히는 앉아있는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바라보았다. 인간처럼 생기를 머금은 눈이 느릿하게 깜박이며 주변을 훑었다. 외양만 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작동과 기능에도 별다른 이상이 없다. 문제는 사고체계였다.
"차유진."
혹은 유진 이그나시오 차. 김래빈은 안드로이드에게 전 주인이 부여한 이름을 불러보았다. 주변을 흥미로운 듯 바라보던 시선이 이름에 반응해 재깍 그에게 닿았다. 반응 속도는 놀랍게도 빠르지만 사실 그에게 안드로이드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수리를 위해서는 이름보다 제품명과 버전 정보를 아는 것이 우선이었다. 김래빈은 주인이 의뢰서에 함께 적어 보낸 안드로이드의 제품명과 버전 정보를 훑었다. 익숙한 품번이었다. 이 제품군에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한때는 그 때문에 리콜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던.
"고객님이 예상하셨던 것처럼, 인간화가 지나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미 리콜 조치가 취해진 시점에서 제조사로부터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도출되었음은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김래빈은 1차 점검 결과를 의뢰인에게 보내기 위해 창을 띄웠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음성이 문자로 변환되었다.
안드로이드는 점점 더 인간을 닮아가도록 진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인간과 같은 생김새를 가지고 같은 행동을 하도록 만들어지지 않는 건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 스스로 인간과는 다르면서도 완전히 동일해 보이는 개체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안드로이드에게 정을 붙였던 많은 주인들은 고작 그런 이유로 반품할 수 없다며 리콜을 거부했다.
리콜을 거부했던 수많은 안드로이드 주인들은 제각각의 이유를 들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안드로이드의 인간화를 제어할 수 있을 거라 믿었고, 어떤 사람은 안드로이드가 지나치게 인간처럼 변해도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누군가는 실제로 성공했으리라. 하지만 이 의뢰인은 아니었다. 의뢰서에 적지 않은 그들의 과거를 김래빈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기꺼웠겠지. 사랑스러웠겠지. 자신을 모방하고 그래서 점점 닮은 모양새로 정교해지는 것이. 그리고 어느 순간 꺼림직해졌을 것이다. 이미 사고체계를 갖춘 안드로이드가 스스로 학습해 점점 더 인간다워지는 과정을 주인은 더 이상 제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화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문제는 안드로이드 스스로가 신경회로를 들여다보길 거부하고 있습니다. 억지력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평소 안드로이드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를 넓게 풀어두셨던 것 같은데, 이 경우 수리공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작업대에 걸터앉아 발을 간헐적으로 까닥이며, 안드로이드는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래도 김래빈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상대는 안드로이드다. 수리공은 다른 누구보다도 그 명제를 의심하지 말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수단을 써서 메세지를 남길 수 있는 걸 굳이 음성을 통해 남기는 이유였다.
"별도의 연락이 없으면 사전에 기재하셨던 대로 자체적으로 처분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메세지를 송신했다. 그리고 긴 한숨을 쉬었다. 안드로이드는 김래빈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IGN-C5ii형 0306-477. 혹은 차유진이나 유진 이그나시오 차. 그에겐 전자가 익숙했고 안드로이드는 자신을 후자의 인격체라고 주장했다.
"나 폐기할 거야, 정말로?"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눈 앞의 안드로이드는 고개를 기울이더니 눈썹을 늘어뜨리며 한번 더 물었다.
"왜 대답 없어?"
그래도 대답이 없자 입술을 비죽인다. 기본적으로 설정되는 안드로이드의 성격과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활기차고 분위기 파악과 표정 변화가 능수능란했다. 그러니까 정말로, '인간' 같았다. 김래빈은 입을 다문 채 그를 가만히 관찰했다.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처음 기동할 때에는 기본적으로 설정된 몇 가지 중 한 유형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그 이후부터는 주변 환경과 주인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변화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섬세해지는지, 얼마나 인간을 잘 모방하는지는 안드로이드의 기본적인 성능 외에도 주변과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받는다.
"김래빈?"
'차유진'은 여기 온 첫 날에 이미 작업대 위에 놓인 명함을 제멋대로 집어올렸고, 이름과 하는 일을 파악한 후에는 그의 신상을 그럴듯하게 추론해냈다. 그와의 몇 번의 대화, 그리고 며칠간의 생활이 제공된 정보의 전부이며 그가 구형 안드로이드라는 걸 감안하면 무시무시한 연산능력이었다.
"그냥 여기서 살면 안 돼? 김래빈 어차피 마음 약해서 제대로 폐기하지도 못하잖아."
그러니 '차유진'이 그가 수리가 불가능한 안드로이드를 그 즉시 내버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내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작업대에서 가볍게 내려선 안드로이드가 그에게 다가왔다. 허리를 굽혀 눈을 마주치고, 손으로 뺨을 쥔다. 안드로이드 특유의 미적지근한 온기가 김래빈을 감쌌다.
"나 김래빈 마음에 들어. 이런 거 첫눈에 반했다고 해?"
생존을 갈구하는 달콤하고 텅 빈 말들이 미형인 것으로 유명했던 그 특유의 웃는 얼굴에서 흘러나왔다.
그 손을 가만히 내버려둔 채, 그는 안드로이드의 인공 각막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약간의 물기가 어려 더욱 사람같은 그 각막 안쪽으로는 안드로이드의 모든 사고체계를 관장하는 신경회로가 뇌마냥 위치해있을 것이다. 김래빈은 수리를 위해 그걸 들여다보고자 했지만 안드로이드는 한번도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김래빈은 악력도, 신체 능력도 차유진보다 떨어졌고, 안드로이드를 강제로 셧다운시키는 차단기는 차마 사용할 수 없었다.
"안드로이드에게는 호오가 없어. 애초에 기본적인 취향도 설정값에 불과해. 그러니 필요하다면 언제든 자체적으로 바꿀 수 있지. 감정은 더더욱 불가능해. 유사한 신체반응을 모사할 순 있어도."
그러니까 그런 말은 통하지 않아. 그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눈썹을 느리게 깜박인 차유진이 손을 물렸다.
"...김래빈 낭만이라는 거 없어? 말하는 게 나보다 안드로이드같아."
안드로이드가 인간에게 던진 말에 김래빈은 웃지 못했다. 안드로이드를 수리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고체계를 이해해야 했다. 때로는 인간보다 안드로이드의 사고과정이 더 합리적이고 명쾌했고, 그들이 내린 결론을 이해하고 그들과 같은 결론을 내려고 노력하다보면 그들의 사고과정에 어느 정도는 동화되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습관적으로 사고하게 된 지도 오래. 김래빈은 가끔 자신이 인간인지, 혹은 어쩌다 유기체의 형상을 하게 된 안드로이드인지 알 수 없다고 자조했다.
다만 감정은 인간만의 것이기에.
"차유진."
김래빈은 오직 그 이유로 자신이 여전히 인간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제 앞에 선 안드로이드가 부질없이 던지는 말들이 슬펐다. 그는 고작 약간의 유예를 위해 인간의 불확실한 감정에 매달리는 차유진을, 안드로이드를 연민했다. 안드로이드는 스스로를 고장내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 안드로이드를 고장내는 건 항상 인간이었다. 사랑을 너무 주어서, 그러다가 제멋대로 내팽겨처서,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실수로, 사고로.
차유진이 망가진 것 역시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래도 그는 언젠가 폐기되어야 했다. 그의 주인이 그를 책임지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위협이 될 거라고 믿어서. 그러니 약간의 시간이 주어진다 한들, 사실은 의미가 없다.
"굳이 나를 설득할 필요 없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도 완전히 동작할 수 없게 되기까지는 여기 머물러도 되니까."
자체적인 처분이란 그런 뜻이었다. 안드로이드들은 그 집에서 시간을 소모하다 끝내는 기동을 멈추었다.
그 시간은 안드로이드보다는 그를 위한 것이었다. 안드로이드는 폐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두려움이라는 개념도, 죽음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을 두려워하는 건 결국엔 인간이다. 김래빈도 인간이라서, 제게 맡겨진 기계들에게 일말의 감정도 남기지 않기가 어려웠다. 김래빈은 안드로이드들이 기동을 멈추는 동안 그들이 안드로이드임을 곱씹으며 천천히 그들과 이별했다.
그래서 그의 집은 거대한 무덤이었다.
2.
김래빈은 단종된 안드로이드의 부품을 찾기 위해 종종 거대한 폐기장을 찾았다. 그곳에는 부서진 기계더미들이 즐비했고 그 안을 뒤지다보면 간혹은 예전에 생산이 중단된 부품을 찾을 수 있었다. 확률은 극히 낮아 지루한 작업이었다. 차유진은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를 따라와 몇 번 더미를 뒤적이는 시늉을 하더니 그게 얼마나 생산성없는 활동인지를 금방 알아챈 모양이었다. 차유진은 그를 내버려둔 채 높인 쌓인 기계더미에 훌쩍 뛰어올라 몇번 슥슥 발을 굴러보더니 그 자리에 냉큼 주저앉았다.
"꼭 그 부품을 써야 해? 기능이 동일하면 되잖아."
안드로이드가 스스로 의문을 가지고 표현하는 것이 극히 어렵다는 점에서 차유진은 뛰어난 개체가 맞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예컨대 감정이나 심리와 같은 문제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김래빈은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일어서 굽혔던 허리를 쭉 펴고는 입을 열었다. 작동의 문제로만 보면 그렇지.
"그렇지만 대부분의 안드로이드 소유자들은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부품을 정도 이상으로 장착한 안드로이드를 보면 위화감을 느낀다고 해. 자신이 애착을 가졌던 그 대상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거지."
"생김새만으로 그렇게 판단하는 거 이상해. 그럼 수리하는 것도 문제 아냐? 어디까지가 동일한 개첸데?"
"그건 안드로이드 주인마다 달라."
의뢰를 할 때 양해를 구하긴 하지만, 까다로운 작업이야. 김래빈은 고개를 젓고는 다시 커다란 고철 더미를 옆으로 밀었다. 찾던 것과 유사한 부품이 틈새에 끼어있었다. 하나를 찾았으니 같은 제조사의 다른 부품을 찾을 확률도 높아졌다. 그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상대의 본질적인 부분이 무엇이냐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다르지. 생김새일수도 있고, 습관일 수도 있고."
복잡해.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차유진이 아예 폐기물 위에 드러누웠다. 그가 누운 장소가 폐기물이라는 건 신경도 쓰지 않는 태도였다.
"김래빈 본질은 뭔데?"
되돌아온 질문에 그는 더미를 뒤지던 손을 잠시 멈추었다. 확실히 대화의 범위나 반응 양상이 풍부했다. 어떻게 구형 안드로이드 주제에 회로에 부하가 걸리지도 않은 채 그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걸까. 그는 고개를 들어 차유진, 정확히는 그 얼굴 거죽 안에 들어있을 회로 부근을 미심쩍은 눈으로 더듬거리다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가 수리하는 건 분명 안드로이드인데, 안드로이드를 수리하다보면 계속해서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과 가장 닮은 존재라서일까.
"...나도 모르겠어."
인간은 언젠가 늙고, 외모는 시시때때로 바뀐다. 성격 역시 예전의 김래빈과 지금의 김래빈이 같지 않을 것이다. 취향, 습관, 인간관계,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시간 앞에 변하지 않는 게 없었다. 그렇다면 김래빈을 이루는 본질적인 부분은 어디에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그게 영혼에 있다고 믿었지만 그는 영혼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인간들은 그런 생각 많이 하던데."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야. 그는 차유진의 말에 대답하며 조금 웃었다.
존재를 고민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자기 자신보다 당장 내일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다만 김래빈은 방금의 대화를 통해 차유진의 주인이 어떤 사람이었을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구매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개 부유한 사람이었지만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지는 않았다. 차유진의 주인은 그런 주제를 퍽 즐겨 말하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사람이라 안드로이드의 자기 제어 능력도 그렇게 자유롭게 설정해두었던 걸까.
"정체성은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야. 주인이 안드로이드를 가늠하듯, 인간도 사회적인 동물이라 내가 나를 규정하는 것만큼이나 남들이 나를 무엇으로 보느냐도 중요하거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차유진은 그제야 연산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안드로이드같은 표정이 되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워."
"내가 아무리 나 스스로를 김래빈이라고 인식해도 주변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나는 사회적으로 김래빈이라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뜻이야."
차유진은 한참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 없었다. 그 적막함 속에서 김래빈은 하던 작업을 이어나갔다. 단순작업이라 생각을 이어나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는 차유진을 생각했다. 스스로를 인격체라고 주장하는 안드로이드. 그에게 오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차유진의 주장은 계속해서 부정당했겠지. 인간조차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부정당한다면 자아를 확고하게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데, 차유진은 여전히 자신이 인간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사고했다.
김래빈은 그 고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인간이라는 그 확신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정작 인간인 그는 스스로의 인간성을 매양 재확인해야 하는데도.
"그러면 김래빈."
차유진이 몸을 일으키더니 폐기물 더미 위해서 훌쩍 뛰어내렸다. 쿵, 하고 지면이 울렸다. 인간의 몸보다 충격을 더 잘 흡수하도록 설계된 안드로이드의 몸뚱아리는, 인간이라면 제법 무리가 갔을 높이에서 뛰어내리고도 절뚝임 없이 움직였다. 그에게 다가온 차유진이 그 옆에 쪼그려앉았다.
"김래빈한테 차유진은 어디까지 교체되어도 차유진이야?"
네가 생각하는 차유진의 본질을 말해줘. 김래빈에겐 차유진의 그 말이 그렇게 들렸다. 저를 올려다보는 그 눈에 시선을 마주치며, 그는 느리게 손을 뻗어 그 안드로이드의 머리를 몇 번 쓸어넘겼다. 인간과 완전히 동일한 감촉을 지니도록 설계된 모발이 그의 손가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론상으로는, 안드로이드는 다른 기체에 옮겨가더라도 그 신경회로가 완전히 보존된 채라면 동일한 개체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실제로 연구를 진행했을 땐 다른 몸에 옮겨진 신경회로가 몸에 적응하는 과정 중에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연상작용을 보인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그렇다면 그 안드로이드는 동일한 개체일까, 아니면 완전히 달라진 개체일까. 사람들은 연구결과를 두고 끊임없이 토론했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질없는 의문이 되었다. 안드로이드는 자아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연구결과로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수한 안드로이드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김래빈은 나름대로의 기준을 만들었다.
"나는 너를 더 이상 수리할 생각이 없어. 그래도 답이 궁금하다면, 그래. 네가 너 스스로를 차유진이라고 주장하는 이상, 그리고 나와의 기억이 남아있는 이상은 넌 차유진이야."
그렇구나. 차유진은 웃었지만, 그 직후 튀어나온 결론은 꽤 생뚱맞았다.
"그래도 나는 부품교체 없이 이대로 죽을래!"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었다니까..."
휘파람을 불며 벌써 저만치 앞서가는 차유진의 등을 바라보면서, 그는 모은 부품을 품에 안고 걸음을 옮겼다. 인간화된 안드로이드의 문제가 처음 대두했을 때, 리콜로 수거한 안드로이드들을 회사가 폐기하는 모습은 소소한 논란거리가 되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같은 감정과 인지능력이 생겨난 것이 인간화이니, 안드로이드의 폐기는 살인행위와 같다며 회사를 비판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제까지 한번도 인간화된 안드로이드의 폐기를 살인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 어떤 안드로이드도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니 차유진이 제 구동 종료를 죽음으로 표현하는 건 법률적으로 어폐가 있었다. 김래빈은 머리로, 머리만으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부품을 고쳐안으며 한숨을 삼켰다. 세상을 0과 1로만 판단했다던 옛 컴퓨터처럼 무감하게 인간과 안드로이드 사이에 선을 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지 못해 그는 차유진의 말을 고치지 못했고, 그러지 못해 그는 사람을 떠나보내듯 안드로이드들이 그의 집에서 천천히 기능이 마비되어 끝내는 구동을 멈추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차유진 역시 언젠가는 그런 종료시점을 맞을 거라면, 김래빈은 그걸 죽음이라고 표현해주고 싶었다.
3.
차유진이 가동을 완전히 중지했다. 그에게로 온 후 꼭 3년만이었다.
김래빈은 차유진이 종종 입에 담았던 대로 그 무엇도 건드리지 않고 안드로이드의 기능이 서서히 마비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구형 안드로이드에 정통했던 만큼 그는 언제부턴가 차유진이 언제쯤 완전히 구동을 중지할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막상 차유진의 마지막이 왔을 때, 김래빈은 마치 오래 기다려온 일이 실현된 것처럼 홀가분하고 허망하기까지 했다.
그는 차유진을 분해했다. 항상 하던 일이라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여전히 쓸 수 있을 것 같은 몇 가지 부품을 따로 떼어놓고 쓸 수 없는 부품은 폐기를 위해 한 군데 모아두고 나자, 차유진이 끝까지 보이지 않으려 했던 그의 신경회로만이 남았다. 김래빈은 그 회로를 만지작거렸다.
"......"
차유진은 그가 회로를 들여다보아도 그를 막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제 그는 원한다면 언제든 그걸 들여다볼 수 있었다.
'차유진은 원하지 않았지.'
그는 제가 떠올린 구절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원하다. 안드로이드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의지나 바람도 마찬가지였다. 안드로이드는 종종 인간을 모방하여 욕구를 표현했지만, 그건 주인의 성향과 관리방식에 따른 것일 뿐 근본적인 욕망을 가진 존재로는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니 설령 안드로이드의 표현에 반하여 그 사고과정과 기억을 들여다본다고 해도 어떤 윤리적 문제도 생겨나지 않았다. 하물며 김래빈은 차유진에게 그가 죽은 후에도 기억을 들여다보지 않겠노라고 약속한 적도 없었다.
분석기계에 연결해두어 조작만 한다면 차유진의 모든 기억과 사고과정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어쩐지 섣불리 회로에 손댈 수 없었다.
'원래는 인간화가 가속된 과정을 분석해보려고 했지만...'
그는 손을 쥐었다 폈다. 목적의식은 이미 흐려진 지 오래였다. 차유진이 그에게까지 온 이유가 인간화였던 만큼 그 원인을 찾아보려면 전 주인과의 기억을 들여다보아야 하지만, 그가 망설이며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있는 목록은 그와 함께 있었던 근 3년간의 기억이었다. 그가 들여다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시간들이었다. 그런데도 궁금했다.
"딱 한번이라면..."
결국 김래빈은 멋없이 중얼거리고는 기억파일을 골라 재생했다. 연산이 진행된 시간에 비해서는 쓰인 전하량이 많다는 특이점을 가진 기억이었다. 그는 날짜를 확인했다. 차유진이 김래빈의 작업실에 머물게 된 후 제법 시간이 흐른 뒤의 시점이었다.
기억파일은 안드로이드의 시야와 그 사고과정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그의 앞에 작업실의 전경이 떠올랐다. 안드로이드 수리 작업을 하던 그의 모습이 비췄다. 배경이 서서히 흐려지고, 영상 속 시야의 초점이 서서히 그에게로 맞춰졌다. 그때의 차유진은 아마 그를 관찰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차유진은 그의 작업실에 머무는 내내 김래빈을 쫓아다녔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안드로이드를 수리하는 건 그의 일상같은 거라 전하량을 소모할 만한 특별한 일이 없었을 텐데.
그는 턱을 괸 채 차유진의 기억 속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5분, 10분. 변화가 생긴 건 그 때였다. 영상 속 김래빈이 멈칫하더니 왼손을 들어 허공에 탈탈 털었다. 그는 그 익숙한 동작이 무엇을 뜻하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땜질하다가 데였나본데. 수리를 하다 보면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영상 속 김래빈도 아무렇지도 않게 작업을 재개했다.
다만 차유진의 신경회로는 그때부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시선이 그의 왼손을 향해 옮겨졌다. 손에 초점을 맞추고 시야를 확대하자, 방금 생겨난 것처럼 발갛게 부풀어오른 자국이 영상을 가득 채웠다. 차유진의 회로는 그게 1도 화상에 해당하는 상처임을 금방 도출해냈다. 차유진이 김래빈의 왼손을 재차 확대했다. 그 손에는 금방 생긴 상처 외에도 흉터와 굳은살이 빼곡했다. 그 두 가지 정보를 토대로 차유진은 연산을 시작했다. 몇 가지 사실과 가능성들이 떠오르고, 선택되고, 자기들끼리 연결되었다. 두 가지 명제가 떠올랐다.
1. 김래빈은 화상을 입었다. 1도 화상은 통증을 수반하며 빠른 처치를 요구한다.
2. 김래빈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김래빈에게는 유사한 상해 흉터가 다수 존재하며 그런 경우 인간은 확률적으로 통증에 무디고 별도의 처치를 요구하지 않는다.
명제로부터 다시 연산이 재개되었다. 차유진은 둘 중 어느 것이 결론으로 합당한지 금방 도출해내지 못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보편적인 안드로이드의 역할과 그의 반응,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보통의 안드로이드가 합리적으로 도출해내야 할 결론은 두 번째였다. 그러나 차유진은 평소 사용하는 몇 배의 부하량을 소모한 끝에, 연산결과에 약간의 오류를 남겨가며 첫 번째 결론을 골랐다.
결론 : 김래빈은 아프다. 치료가 필요하다.
김래빈은 화면에 뜬 결론을 몇 번이고 읽어보았다. 그리고 차유진이 거실로 이동해 장식장을 뒤져가며 반쯤 빈 화상 연고를 찾아내는 장면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화상에 익숙해졌을 무렵부터 그는 화상연고가 있어도 굳이 찾아 바르지 않았다. 당연히 화상 연고의 유효기간은 예전에 지나있었다. 차유진은 그걸 확인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다시 거실을 뒤져 약간의 돈을 들고 외출해, 주인의 심부름을 하는 안드로이드를 가장하여 천연덕스럽게 새로운 화상연고를 구입했다.
영상 속에서 차유진은 그렇게 구한 연고를 그에게 내밀었다. 연고를 받은 자신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 때 그 연고를 결국 발랐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김래빈은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차유진의 기억을 종료했다. 보지 말 걸,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차유진의 생각이 궁금했지만 이런 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기록이 그를 통째로 흔들고 있었다. 그는 차유진의 신경회로를 재생장치로부터 분리했다. 대신 그는 서랍 속에서 작은 저장칩을 꺼내 꽂았다. 다시 재생버튼을 누르면 아직 멀쩡했던 때의 차유진이 투영되었다. 그가 단 한 번 남긴 기록이었다.
차유진은 웃고 있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았다. 시덥잖은 일이었을 것이다. 차유진은 잘 웃는 편이었다. 본래 성격이 그러했는지 아니면 인간화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그 차유진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의 기억보다 조금 더 평범한 모습이었다. 기억 속 차유진은 그보다는 좀 더 환하게 웃는 안드로이드였지만, 영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김래빈은 인정했다. 왜곡된 건 그의 기억이다. 그가 차유진을 그렇게 기억하는 건 차유진과의 기억, 그의 감정, 관계가 개입된 탓이다.
그러니, 세상엔 분명히 데이터로만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김래빈에게 차유진이 찬란한 존재였고, 그래서 실제 모습보다 그의 기억속에서 좀 더 빛났던 것처럼. 차유진이 안드로이드에게 보다 자연스러운 결론을 포기하고 김래빈의 상처를 살펴 연고를 사러 나갔던 건 그 어떤 합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세상에서는 그 비합리적인 판단을 아마 걱정이라고 부를 것이다. 혹자는 사랑이라 했다.
인간과 안드로이드 사이에 그가 그었던 금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차유진은 안드로이드라고 수없이 되뇌였던 날들이, 그래야만 억누를 수 있었던 마음 속 흔들림이 되살아났다. 부정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의심하면 차유진의 마지막을 평온하게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끝까지 차유진을 안드로이드로 대하고 싶었다. 이제까지 그를 스쳐간 수많은 개체들처럼 특별하지 않은 무언가로 묻어두고 싶었다.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작업실을 뒤져 상자를 하나 꺼냈다. 간혹 눈물로 시야가 흐렸지만 오랫동안 비슷한 작업을 반복해 온 몸은 익숙하게 움직였다. 그 안에 차유진의 신경회로와 제 기록을 넣고 뚜껑을 닫았다. 금속은 녹슬고 뒤틀리고 마모된다. 인간은 각종 저장장치를 만들며 기록의 영속성을 꿈꿨지만 그 어떤 기록장치도 영원하지 않았다. 기억은 보다 연약하다. 언젠가는 오늘의 기억도 왜곡되고 흐려지고 잊혀질지도 몰랐다. 그래도 괜찮았다. 김래빈은 차유진을 그 어떤 장치와 기계 속에도 남기지 않고 그저 기억 속에 두기로 했다. 그는 레이저를 들어 뚜껑에 각인을 새겼다. 망설임 끝에 상자엔 IGN-C5ii 0306-477 대신 차유진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남았다.
어쩌면 앞으로도 인간처럼 생각하는 안드로이드를 마주칠지도 모른다. 수리공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김래빈은 그 중 무엇도 차유진과 같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짐작했다. 차유진은 그에게 유일한 개체로 남을 것이다. 김래빈은 인간의 영혼조차 믿지 않는 사람이었음에도, 어쩐지 이미 가동이 멈추고 조각조각 분해된 차유진이 그의 곁에서 거 보라며 웃고 있을 것만 같았다. 비합리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김래빈은, 오늘만큼은 인간의 그 특권을 고스란히 사용하기로 했다.
그는 수리점의 문을 닫았다. 추모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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