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0.

바람이 불었다. 꽃잎이 바람에 실려 날아오고 있었다. 제 얼굴에 붙은 꽃잎을 맥스는 구태여 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숲의 입구에 서 있었다. 그의 발치에는 죽어가는 워켄이 누워있었다. 아무렇게나 사지를 늘어뜨린 그의 몸 아래에선 흘러내린 피가 줄기를 이루어 번져가고 있었다. 이미 개미 몇 무리가 그의 피 웅덩이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마치 그의 죽음을 예고하듯이. 아직 그는 살아있었으나 결국 죽을 터였다. 불치병으로 알려진 병에 걸려.



1.

사람들은 그 병을 꽃이 피어나는 병이라 불렀다. 불행하게도 그 이름처럼 낭만적인 병은 아니었다. 한 감정을 지나치게 격하게 드러내거나 특정 감정에 오랫동안 매몰되면 몸 끝에서부터 식물이 자라기 시작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병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 전조는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죽어간 사람의 무덤에서 같은 종류의 식물이 자라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만, 무덤에서 식물이 돋아나곤 하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던지라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뿐이었다.

그 사이 병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사람과 사람을 건너뛰며 병은 점차 강력해졌고, 병의 진행이 빨라져 살아있는 사람에게 식물이 돋는 현상이 발견되었을 때에는 이미 늦어있었다. 학계는 그제야 조사에 착수하여 병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을 내어놓았지만, 병을 고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많은 의사와 과학자들이 이 원인 모를 병을 치료해보려 애를 썼다. 인간에게는 해가 없지만 식물에는 독이 되는 물질을 투여해봤던 과학자도 있었고, 뿌리가 더 자라기 전에 몸을 갈라 뿌리를 다 뜯어내보고자 했던 의사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병을 완치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많은 약이 그 병의 치료제라 사람들을 속이며 뒷골목을 돌아다녔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공인된 방법은 최대한 모든 감정을 억누르는 것 하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이미 증세가 나타난 후에는 고작 병의 진행을 늦추는 것이 다였다. 사람들은 점차 재앙이라는 단어와 함께 인류의 멸망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었다. 감정이 없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그래서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발병자들을 도시의 바깥으로 쫓아내었다. 감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죽어 나갔기에 남은 사람들은 지극히 이성적이었고, 광기에 찬 것처럼도 보이는 그 행동들 또한 오히려 철저한 계산 끝에 나온 것들이었다. 어떻게 병이 전염되는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시 외곽에선 그래서 끊임없이 사람들이 죽어 나갔고, 그들이 피워낸 식물들이 군집을 이뤄 자라나다 어느 순간 숲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어떤 이들은 이제껏 인간에게 훼손당한 자연이 복수하는 것이라 탄식하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아래가 시체의 산이라는 것도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햇빛을 받은 그 나무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아름답게 잎사귀를 흔들어댔다.

* * *

워켄이 그 병에 걸릴 거라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의 성격을 알았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랬으리라. 심지어 워켄 자신마저 손가락 끝에서 돋아난 싹을 보고 나서야 자신의 발병을 알게 되었다. 몸 안에서 혈관을 파고들며 뿌리가 자라는 고통을, 그는 단순히 불규칙한 생활습관이나 바르지 못한 자세에서 오는, 위경련이나 팔 저림 따위로 생각했던 탓이다. 며칠간 퍼석하던 손끝이 완전히 갈라지고 그곳에서 피에 젖은 떡잎이 톡, 하고 자기 존재감을 드러냈을 때에야 워켄은 자신이 병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는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도.

그 즉시 워켄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어차피 병을 숨긴들 금방 발각되어 쫓겨날 터였다. 그에겐 꼭 인간의 도시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가 아끼던 오토마타들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워켄과 똑같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그랬다. 처음으로 그 병에 걸린 오토마타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으나, 곧 오토마타 또한 감정을 가진, 유기물로 이루어진 개체라는 것을 깨닫곤 납득했다. 납득이라기보단, 엄밀히 말하자면, 이미 일어난 상황을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틀 안에 끼워 넣은 후 만족한 것에 더 가까웠지만.

인간과 가장 유사한 형태를 가진 오토마타들이 가장 먼저 기동을 멈추었다. 그런 오토마타 중 대다수는 워켄의 작품이었다. 자신이 만들었던 작품들이 인간과 동일한 병에 걸려 죽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처음엔 당황했고, 그다음에는 안타까워했으며, 마지막으로는 만족스러워했다. 인간만이 걸릴 수 있다고 여겨졌던 병에 걸려 죽어갔다는 사실이 그가 얼마나 ‘완벽한’ 오토마타들을 만들었는지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워켄은 도시를 나서면서도 오히려 평온한 기분으로 제 죽을 자리를 골라 누울 수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몸 안 곳곳에 퍼져나간 뿌리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혈관과 내장 곳곳을 차지했을 식물 뿌리들은 어떤 때에는 나붓하게 워켄의 몸 안을 간질였고 어떤 때는 바늘로 찌르듯 따끔따끔한 느낌을 가져다주었으며, 어떤 때에는 온몸을 뒤틀어야 할 정도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의 몸에 돋은 식물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자라났다. 인간이 지닌 영양분을 제 몸 자랄 자양분으로 삼은 탓인지도 몰랐다. 맨 처음 돋았던 떡잎이 어느새 줄기가 될 만큼 자라나고 남은 손가락과 발가락의 끝이 갈라지는 데 고작 한나절이 걸렸다.

워켄은 자신이 과다출혈로 죽는 것이 더 빠를지, 탈수로 죽는 것이 더 빠를지, 혹은 뿌리가 척수나 뇌까지 침투하는 것이 더 빠를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어느 쪽이던 남은 시간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을 거란 걸 깨달았으나, 그는 절망하는 대신 옷자락을 이불 삼아 덮고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가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의 몸 위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았다. 맥스가 그의 발치에 서 있었다.



2.

맥스는 인간들에게 버려졌다.

인구의 반 이상이 괴멸당할 위기에서 더 이상 사람들은 오염자를 쫓는 일을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히 협정심문관이라는 조직 또한 와해되었다. 그 과정에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맥스를 누구도 신경 써주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가 처리한 마지막 오염자는 꽃이 피어나는 병에 걸린 사람이었고 맥스가 그의 뒤를 쫓을 때에는 이미 도시 밖으로 쫓겨나 있었다. 아무도 그에게 도시 밖으로 쫓겨난 오염자는 쫓을 필요가 없다 말해주지 않았기에 맥스는 그를 따라 도시를 나섰지만, 오염자를 죽인 그가 도시로 다시 들어오려 했을 때 사람들은 굳게 닫힌 문을 열어주려 하지 않았다. 전염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들은 맥스가 감정이 제거당했다는 걸, 그래서 그들에게 여전히 효용성이 있으리라는 것을 끝내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도시 바깥을 배회했다. 어떠한 목적도 없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아무런 임무도 주어지지 않는 상황은 맥스가 판단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은 것이었고,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명령을 내릴 만한 누군가를 찾아다녔다. 워켄의 모습이 배회하던 그의 시야에 잡혔을 때 그에게 다가간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이 공간에서 그만이 유일하게 맥스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워켄은 맥스에게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맥스를 발견하고 물끄러미 그를 응시하던 워켄은 아무 말 없이 곧 눈을 내리깔았다. 단 한마디만 한다면 쉽게 죽을 수 있음을, 맥스가 간단한 몸짓 하나로 몸을 찢고 식물이 자라나는 고통에서 워켄을 해방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맥스를 본 워켄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병에 걸린 원인이 그와 관련되어 있으리라는 것을. 다른 오토마타에게는 한 번도 가진 적 없던 감정, 즉 후회, 미련, 집착과 같은 감정들이 맥스를 매개체로 그조차 모르게 그의 가슴 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어느 순간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자신의 몸을 망가트리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그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맥스는 워켄에게 단 하나의 오점,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작품이었다. 원인이 무엇이든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야 어차피 제 소관이었을 테니 맥스가 원망스럽진 않았으나, 그래도 워켄은 그에게 죽음을 부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한낱 그의 자존심 문제라 해도 상관없었다.

그가 명령하지 않았기에, 맥스 또한 그 어떤 움직임도 없이 다만 워켄 옆을 지키고 서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주 가끔 맥스가 움직일 때에는 낡은 관절부가 맞물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교묘하게 맞물려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접합부를 해체하고 충격을 보호하기 위한 섬유 가닥들을 들어내, 다 닳고 헐거워진 부품을 새것으로 갈아 끼워 윤활유를 칠하면 더 이상 저 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을 텐데. 워켄은 막연히 맥스를 수리하는 상상을 해보다 곧 그만두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네게 미안하진 않구나.”

이 말을 하면, 그가 가지고 있던 감정을 인정해버리면 병의 진행이 빨라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면서도 워켄은 입을 열었다. 저런 것을 만들어낸 저 자신이 후회스러운 건 여전했다. 워켄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 * *


죽음의 정의를 ‘모든 생체활동의 정지’라 한다면 워켄은 아직 살아있는 것이 맞았다. 이미 고통에 그 의식을 잃은 지 오래라 하더라도. 오로지 그의 심장이 아직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맥스는 그의 옆에서 조금 더 기다렸고, 본의 아니게 죽어가는 워켄을 관찰하게 되었다.

워켄에게서 처음의 평온함은 많이 사라져 있었다. 고통 때문이었다. 몸 안에서 가지가 뚫고 자라는 고통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 처음에는 얼마간의 여유도 있었으리라. 저릿저릿함이 온몸 곳곳으로 퍼져나갈 때 워켄은 자신이 아는 신체 부위의 명칭들을 입속으로 중얼거려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저리고 찬 느낌이 옅어지면 그 자리를 아스라한 고통이 채웠고, 곧 날카로운 격통이 몰아쳤다. 혈관 안에서 꿈틀댈 뿌리의 존재감을, 워켄은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숨은 점차 불안정해지고 가팔라졌다. 간혹 그는 숨조차 멎은 채 손가락 끝으로 땅 표면을 긁곤 했다. 그럴 때 그의 목에선 나지막한 쇳소리 같은 그르렁거림이 흘러나왔다. 맥스에게는 익숙한 인간의 신체반응이었다. 비명을 지를 수조차 없을 만큼 고통을 느끼는 인간들이 간혹 그런 반응을 보였다. 그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워켄은 아주 오래 숨을 참고 있었던 사람처럼 숨을 헐떡였다.

하나의 가지가 돋아날 때마다 그의 몸은 눈에 띄게 퍼드득 경련을 일으켰고, 그러면 맥스는 가만히 그가 완전히 죽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셈했다. 워켄에게선 여전히 아무런 명령이 없었다. 어차피 자비나 연민 같은 것을 담을 마음이 없는 맥스였지만, 아마 누군가가 그들을 보았다면 기괴한 풍경이라 했을 것이 분명했다. 제 피조물을 인정할 자신이 없어서 입을 굳게 다물고 모든 고통을 견뎌내는 창조주와, 그의 모든 소리 없는 발악을 망막에 담았음에도 연산장치의 작용 한번 없이 그저 흘려보내기만 하는 유기물은.

죽어가는 마지막 시점에서 워켄은 눈을 떴다. 바싹 마른 입술과 아무런 기력도 남아있지 않은 몸과 곧 끊어질 듯 가팔라진 호흡이 느껴졌다. 숨을 내쉬기 위해 움직이는 가슴의 아주 얕은 오르내림마저도, 온몸에 식물이 얽혀버린 이제는 고통이었다. 열로 들뜬 시야에 자신의 몸을 뚫고 나온 가지들이 흐릿하게 맺혔다. 초점을 맞출 생각조차 들지 않아 가지 끝에 돋은 잎사귀의 윤곽선이 배경의 숲에 파묻혀 한들한들 흔들리는데, 이상하게도 그게, 참-

아름다웠다. 온 생애를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는 생명들을 틔워내는데 바쳐서일까. 워켄은 제 몸을 찢고 나온 그 생물이 참 밉지가 않았다. 그 식물이 뿌리내리게 된 제 감정은 그렇게도 음습하고, 먼지 쌓인 방구석처럼 거무튀튀한데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앞에 석상마냥 서 있는 기계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음절 하나, 손짓 하나, 그것도 힘들다면 아주 미세한 동공의 움직임 하나만으로 맥스에게 무언가를 전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죽여 달라거나, 혹은 그 외의 다른 것들을. 그는 아마 아주 오래 남아 있을 테고, 자신이 남긴 그 무엇을 그저 간직하고 있다가 어쩌면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들, 오토마타에 관한 것들, 혹은 병이 번지기 전의 세계, 불멸과 완벽을 꿈꾸었던 욕망 같은.

그와 동시에 워켄은 예감했다. 어쩌면 앞으로 세상에 남아있게 될 그의 흔적은 저 맥스가 유일할지도 모르겠노라고. 그의 온 인생을 걸고 만들어내었던 모든 작품과 흔적과, 그리고 관계들이 전부 다 사라지고 나서도, 저 기계만이.

그건 아주, 끔찍한 상상이었다. 모든 완전한 것들이 사라지고 불완전한 것만이 남아있는.

갑자기 몰아치듯 감정이 밀려 들어와서 워켄은 아, 이것이 마지막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게 정말로 마지막이었다.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맥스에게 어떤 손짓 하나조차 그는 남기지 않았다.

끝까지 철저한 외면이었다.



3.

까악. 까마귀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숲 너머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워켄을 향해 접근해왔다. 포식자가 없고 먹이가 풍부한 이 숲에서 까마귀들의 깃털엔 윤기마저 흘렀다. 늘어져 있는 워켄의 주변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까마귀는 동정을 살폈으나, 그가 채 살코기를 향해 부리를 뻗어보기도 전 어디선가 덜그럭, 하는 낯선 소리가 났다. 맥스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까마귀는 제풀에 놀라 날아가 버렸고 그 서슬에 주변의 나무들이 흔들렸다. 나뭇가지에 엉킨 채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던 백골들이 잘그락거리며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한동안 울려 퍼졌다.

그의 생체기능이 멎었다는 신호가 들려왔지만 맥스는 조금 더 그곳에 서 있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에겐 단지 그를 제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인간이 죽은 후 그의 행동방향에 대해 결정을 내릴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워켄은 마치 고대 비극의 주인공처럼 식물에 온몸이 꿰뚫린 채로 앉아있었다. 처음에 그는 반듯하게 바닥에 누워있었으나 그의 몸을 뚫고 자라난 가지들이 햇빛을 찾아 위로, 위로 뻗어 나가는 과정에서 마치 끌려 올라가듯 그의 상체가 세워졌던 탓이었다.

양손과 발에서 뻗어 나갔던 첫 번째 가지들은 워켄의 몸 안에 뿌리를 내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주변 대지까지 뿌리를 늘려나가 그의 손발을 땅에 옴짝달싹 못 하게 묶어놓았다. 그의 사지에 감긴 덩굴은 언제고 제멋대로 방향을 바꾸었고 워켄의 몸은 그 움직임에 맞추어 무력하게 뒤틀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관절이나 뼈끼리 마찰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우두둑, 하고 들려왔다. 인간이 결코 행할 수 없는 동작과 방향으로 비틀려져 있는 워켄의 몸은 예술품 같기도 했고, 더는 어찌할 수 없는 쓰레기더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의 팔과 다리는 이미 잔인하리만치 헤집어져 있었다. 뿌리가 혈관을 막으면서 피부는 쉽게 건조해졌고, 갈라졌던 상처는 피가 통하지 않아 거멓게 썩어갔다. 그 틈새에 벌레들은 알을 낳았고, 곧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은 이미 다 말라가는 피를 찾아 피부의 틈새 더 안쪽으로 기어들어갔다. 가죽만이 덜렁거려 안쪽으로 허옇게 뼈가 드러나는 발등을 뚫고 돋아난 가지에선 마디마디 희디흰 꽃봉오리가 피었다.

병은 그의 내장기관에까지 침투해있었다. 갈비뼈의 사이를 뚫고 돋아난 제법 굵은 가지에는 워켄의 피에 젖은 셔츠 조각이 걸려 한들한들 흔들렸다. 가지가 뻗어 나가는 힘을 이기지 못한 갈비뼈는 부러져 흉물스럽게 그 뾰족한 끝을 복부 바깥으로 내보이고 있었고, 조금만 그의 품 안으로 시선을 돌리면 쏟아져 내린 내장의 끄트머리들이 보였다. 한때는 갖가지 체액들로 번들거렸을 그 내장의 표면은 장기간 바깥 공기에 노출되었던 탓에 바짝 말라있었다.

숙주가 죽었어도 식물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자랐다. 초점이 없는 동공 너머로 관자놀이를 따라 뿌리가 돋아나고 있었다. 뿌리의 모양대로 올록볼록하게 튀어나온 피부 표면은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징그러웠다. 곧 저 뿌리는 뇌까지 파고들어 그 영양분을 토대로 싹을 틔울 터였다. 그러면 두개골 안에서 뻗어 나갈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식물의 가지는 구멍을 찾아 이리저리 몸을 뒤챌 것이었으며, 그 가지들이 결국 방향을 돌릴 곳도 뻔했다. 결국, 그의 보라색 눈동자 또한 식물들의 힘에 밀려 조만간 바닥을 뒹굴게 될 신세였다.

이미 죽음의 냄새를 맡은 새들이 하나둘씩 시체 주변에 모여들고 있었다. 뼈와 식물의 줄기가 엉켜 그의 시체를 뜯어내긴 쉽지 않겠으나 여기저기 튀어나온 살과 내장을 뜯는 것은 새의 부리만으로도 충분했다.

맥스는 그쯤에서 떠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여전히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였다. 끝내 그의 창조주마저 앞으로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워켄을 뒤로 한 채 그는 걸음을 옮겼다. 자신에게 명령을 내려줄 누군가를 찾기 위해. 제가 언제까지 이 숲을 떠돌아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인형은 새로운 인간을 찾아 무심히 발을 놀렸다. 워켄의 무덤을 만들어준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맥스의 인지체계엔 참혹함이라는 감정이 없었다.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었다. 곧 밤이 오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워켄도 썩어 문드러져 다른 시체들처럼 대롱대롱 숲에 매달릴 터였다. 그리고 더 많은 나날이 흐르면 인간들이 다 멸종하는 날이 올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후에도 맥스와, 감정 없이 아주 단순한 기능만을 가진 오토마타들은 여전히 언제나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움직이고 있을 것이었다. 그들의 몸에 결함이 생기거나 에너지원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어쩌면 영원히.


End

다음페이지는 선입금 특전이었던 외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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