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꿈을 꾸었다.
눈 앞에 맥스가 있었다. 자신의 손이 그의 가면을 벗겨내었다. 고철덩어리가 마치 고무마냥 아무렇지도 않게 떨어져나가자 그 안에는 인간의 얼굴이 들어있었다. 눈을 부릅뜬 남자의 얼굴이었다. 동공의 움직임은 없었고 피부는 부자연스럽게 희었다. 이마를 가로지르는 절개된 흉터와 얼굴 반쪽을 뒤덮은 화상에서는 진물과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입으로 그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다. 워켄은 그 입술의 움직임을 보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날 죽여. 남자는 그렇게 절규하고 있었다. 그리고 워켄은 곧 그것이 꿈이란 걸 깨달았다.
기억력이 지나치게 좋은 건 때로는 좋지 않았다. 고작 단 한 번 보았을 뿐인데, 꿈에 나타난 얼굴은 지나치게 선명했다. 하지만 막상 맥스의 가면을 벗겨보면 그 안에는 무수한 기계와 기관들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워켄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상한 꿈이었다.
간단한 일일 겁니다.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 그대로였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기는 하나 어렵지는 않았다. 그 동안 인간의 과학과 의학, 그리고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다만 그 지식을 소유하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주 일부만으로 제한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워켄은 그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범주 안의 인간이었다. 그런 워켄이 고작 실험 하나로 쩔쩔맬 리 없었다. 게다가 재료는 그들이 알아서 준비해온다 하지 않았던가. 그 실험은, 만약 성공한다면, 과학과 오토마타 기술의 가장 최첨단이 집약된 결과물이 될 터였다. 어쩌면 불사로의 첫 걸음이었다.
그들은 인간 하나를 워켄에게 내주었다. 그를 데려온 엔지니어는 그를 어차피 죽었어야 하는 인간이라 소개했다. 워켄은 그런 사소한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그 인간이 실험체로서 적당한가, 그것 뿐이었다. 그는 인간의 신체 상태를 체크하고 곧 수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치사량에 아슬아슬하게 못 미치는 마취제를 투입한 인간은 마치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워켄은 그 인간의 머리카락을 밀어 두피를 벗겨내었다. 얇은 피부는 죽죽 잘려나갔고, 피와 피부조직에 젖은 두개골을 징그럽다 느낄 새도 없이 그는 인간에게 수혈팩을 꽂아 넣고는 바로 다음 단계에 들어가야 했다.
그 뒤의 작업들은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 필요했기에, 워켄은 직접 메스를 들기보다는 기계로 작업을 조종하는 방법을 택했다. 뇌는 아주 섬세한 기관이어서 고작 산소가 몇 분 공급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세포가 괴사하곤 했고, 수술에 사용하는 모든 톱날과 메스, 레이저 등은 아주 정교하게 조작되어야만 했다. 워켄의 손 끝은 섬세했으나 모든 것을 그의 손으로 하겠다 고집부리기엔 그는 제 한계를 너무 잘 알았다.
진동하는 톱날이 뇌두개의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뇌를 감싸고 있는 여러 겹의 막 중 어떤 것 하나라도 건드릴 수 없었다. 뼈를 들어내자 드러난 질긴 막은 혈관이 그대로 붙어있는 채로 뇌척수액의 움직임에 맞추어 꿀렁대었다. 뇌에 연결되어있는 감각신경들을 최소한의 손상만 입힌 채로 끊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뇌를 기계 안으로 이식하는 모든 작업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끝내야 했다. 이미 뇌를 떼어낸 그 순간 인간의 몸은 시체와 별다를 것이 없어지게 되기 때문에. 매 순간 워켄은 제 모든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뇌는 무사히 새 그릇에 안착했다. 많은 공상과학소설가들이 꿈꿨던 그 장면 앞에서도 워켄은 별다른 감흥 없이 이마에 맺혔던 땀을 닦았다. 그는 기계적으로 오토마타의 상태를 확인하고, 실험의 성공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몇 가지 간단한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식된 후에도 기존의 기억과 감정, 인격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워켄은 물었다.
"이름."
"---"
기계가 대답했다. 워켄의 손에 들린 그의 인적사항이 팔락, 흩어졌다. 우습게도 단 한 번 만에 실험은 성공했다. 워켄은 눈을 감았다. 실험 과정은 이미 기록되어 있을 터였다. 피로에 휩싸인 채 그는 마지막으로 할 일을 하기 위해 손에 쥐고 있던 콘솔의 스위치를 눌렀다. 잠시간의 경련 후 오토마타가 털썩 쓰러졌다. 워켄은 그의 손으로 방금 그의 뇌세포 일부를 파괴했다. 아마 다시 눈을 뜨면 그는 기억도, 감정도 사라져 있으리라.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로서의 정체성도, 인간이 지녀야 하는 고유한 특성들도 순식간에 없애버린 그 무식한 파괴가 어쩌면 다른 뇌의 활동에 간섭과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워켄은 씁쓸하게 무시했다. 어차피 그는 일회용일 터였다.
그래서 워켄은 실험의 성공을 축하하던 엔지니어가 그를 데려가야겠다 이야기할 때 드물게도 당황했다.
"폐기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럴리가요. 사용할 수 있다면 사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것을, 대체 왜. 워켄은 할 수 있다면 거절하고 싶었다. 성취감도, 보람도 없었던 실험이었다. 분명 성공적으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미 하나의 완성품인 예술작품에 끌과 망치를 대어 망쳐버린 기분이었다. 자신이 만들고 싶었던 것은 인간이지, 저런 인간도, 기계도 아닌 괴상한 조합품이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에 워켄 안에서 그것은 이미 재활용될 수 없는, 폐기되어야 할 물건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끝을 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도록 처리해야 하는. 이미 인간이었을 적의 시신은 그렇게 처리되었고 저 무기물만이 남아있었는데. 그러나 의뢰자는 저들이었고, 의뢰한 실험의 결과물의 거취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것 또한 저들이었다. 마음대로 하라 이야기를 하면서도 워켄은 마치 제 손에 씻어내지 못한 끈적거림이 남은 것 같은 찝찝함을 느꼈다. 이내 그 찝찝함은 마음 한 구석에 지워지지 않을 얼룩으로 남았다.
그들이 기계를 데리고 사라진 후 워켄은 오토마타가 놓여있던 실험실 한 구석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텅 비어버린,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았기에 더욱 더 눈길을 뗄 수 없는.
그 후 워켄은 그 오토마타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제 불완전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개체가 바깥을 돌아다닐 거라 생각하면 어딘가 끔찍했다. 마치 그에 대한 반동처럼 워켄은 더욱 더 오토마타의 연구에 매달렸다. 더욱 더 완벽한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래서 한동안 워켄은 맥스를 잊고 살았다.
프랑켄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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