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Chapter 3

괴물이 죄수 하나를 찢어 죽인 이후로 아치볼드는 새로 들어온 죄수들의 동요를 진정시키려 갖은 애를 썼다. 그러나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 사이에 죄수 하나가 자살을 선택했다. 새로 들어온 죄수 중에서 가장 어렸던 남자였다. 한동안 공황에 가까운 불안 증세를 보이던 그는 결국 밤사이 자신의 옷을 벗어 목을 매었다. 같이 방을 쓰던 오래된 죄수 하나는 차마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못하게 막았으면 잠깐은 더 살았겠지. 그리고 미쳐서 결국엔 죽었을 거야. 저번 더글러스가 그랬던 것처럼.”

시체와 한 방에서 밤을 지새웠음에도 그는 비교적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 광경을 벌써 몇 번이고 보아온 사람만이 내보일 수 있는 침착함이었다.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에바리스트는 시체를 대들보에서 내렸다. 목을 맨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나는 그래도 살아있길 바랐어. 젠장.”

“그건 네 이상이지, 아치볼드. 죽은 사람이 안타까운 것과는 별개로 산다는 게 꼭 정답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아야 해.”

“그래서 내가 당신을 싫어하는 거야, 마크.”

기운 빠진 어조로 아치볼드가 대화를 끝맺었다. 그동안 에바리스트는 시체를 모포로 감싸는 작업을 끝낸 채였다. 아치볼드가 시체를 짊어진 채로 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닫고 나간 사이 걸쇠를 잠그는 에바리스트에게 마크는 목걸이 하나와 사진 몇 장을 건넸다.

“받아. 그 애 유품이다.”

“이걸 왜 저에게……?”

“아치볼드에게 갖다 주면 유품을 정리하는 곳을 가르쳐 줄 걸세. 거기에 보관해 둬.”

에바리스트는 무심코 사진을 훑어보았다. 사진에는 가족처럼 보이는 다섯 명의 남녀가 다정하게 서 있었다. 가장 어린 꼬마 남자아이가 죽은 죄수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그의 등 뒤로 고개를 내밀어 함께 사진을 들여다보던 마크는 허허, 웃었다.

“그나저나 자네도 이런데 떨어진 것치곤 굉장히 침착해 보이는걸.”

“잘 모르겠습니다. 현실감이 들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고요.”

그건 좋지 않은데, 하고 나이 든 죄수는 가만히 에바리스트를 들여다보았다. 그 눈길이 부담스러워서 에바리스트는 슬쩍 고개를 돌리곤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 영감 그래 봬도 유명인이긴 해.”

기록보관소의 문을 열쇠로 열며 아치볼드는 투덜거렸다. 마크가 말하던 ‘유품을 정리하는 곳’은 본관 3층에 있었다. 평소에는 거의 사용할 일이 없다고 해서 첫날 에바리스트에게 건물을 소개할 때에도 그냥 지나갔던 곳이었다.

“그렇게 늙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럼 뭐해. 매일 하는 말마다 세상 다 산 영감 같은데. 자유와 진리라는 잡지 들어봤나? 거기 편집장이었어.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다가 막바지에 딱 걸렸지.”

“『자유와 진리』라고요?”

“자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아마 지금은 폐간되었거나 운 좋으면 지하에서 몰래 발간되고 있겠지.”

읏샤, 하고 가장 위에 올려진 상자를 꺼내며 아치볼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러나 그 잡지가 반정부세력 내에서 얼마나 권위와 영향력이 있었는지를 알고 있던 에바리스트는 깜짝 놀랐다. 아치볼드의 말마따나 오래전에 폐간되어 지금은 공식적으로 발행되지 않는 잡지였지만 여전히 그 잡지의 일부를 스크랩해서 보관하고 있다가 붙잡혀 오는 사람도 많았다.

“이런. 그 정도로 놀라면 곤란한데. 여긴 혁명가들의 무덤이라고.”

책상에 내려놓은 상자의 뚜껑을 열며 아치볼드가 농담을 던졌다. 차르륵. 상자 안에서 서류봉투들이 쏟아져 내렸다. 각각의 서류봉투에는 이곳에서 죽어갔을 사람들의 이름과 생몰년대가 적혀 있었다. 눈으로 대충 훑어보니 이 상자에 들어있는 인물들은 비교적 최근에 죽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중에는 익숙한 이름들도 끼어있었다. 몇 명은 에바리스트의 손으로 잡아넣었던 인물이었다.

“여기 어딘가에는 로자의 마지막 시도 있고, 일리야가 보내지 못한 서신들도 남아 있지. 아차, 일리야라고 하면 못 알아들으려나. 그러니까…….”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좋을 거라고, 에바리스트의 이성이 속삭였다. 그런데도 어느새 에바리스트는 입을 열어 자연스럽게 아치볼드에게 대꾸하고 있었다.

“<지금 다시 저항권을 말하다.>의 저자 말입니까.”

이번엔 아치볼드가 놀랄 차례였다.

일리야는 유명한 문필가이자 선동가였다. 그의 글은 투박하고 단순했지만 그만큼 명료하고 날카롭게 현실을 비판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이 에바리스트가 말했던 <지금 다시 저항권을 말하다.>라는 작고 얇은 팸플릿이었다. 그러나 그 저작은 너무나도 유명했기에 에바리스트가 그 팸플릿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한들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에바리스트가 일리야라는 이름과 팸플릿을 연결시켰다는 사실이었다.

작가는 일리야라는 필명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그의 본명에도 일리야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 이름은 반정부주의자 사이에서나 암호처럼 통용되던 별칭이었다.

“이제 그 이름이 정부에게까지 알려진 건가? 아니, 그렇다는 동향은 듣지 못했는데. ……설마 자네 그쪽이었어?”

따라서 일리야라는 이름에 반응한다는 건 한때 반정부주의자였거나 적어도 그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던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잠깐이었을 뿐입니다. 아주 예전에.”

드르륵. 에바리스트는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자신이 꺼낸 말의 무게에 자신이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가급적 다른 사람에겐 꺼내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었다. 죄송하지만 먼저 나가보겠다는 말만 남긴 채로 에바리스트는 그곳을 떠났다. 닫히는 문 사이로 아치볼드의 탄식이 새어나온 것도 같았다.






그날 밤에는 도무지 잠들 수 없었다.

에바리스트는 제 성급한 발언을 후회했다. 한번 묻으려 작정을 했던 과거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설령 간만에 들은 익숙한 이름이 향수 비슷한 것을 불러왔을지라도.

결국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마음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건물 밖에서 바람이라도 쐴 요량으로 그는 대충 옷을 꿰어 입고는 서랍을 뒤적였다. 이 근방에는 가로등도,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도 없어서 이 시간에 바깥을 돌아다니려면 손전등이 필요했다.

“…?”

손전등을 찾던 에바리스트의 손끝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걸려들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으나 그 물체를 천천히 더듬어본 에바리스트는 곧 그것이 무엇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손전등과 함께 받았던 권총이었다. 아마 이걸 쓸 일은 거의 없겠지만, 일단은 기본 지급품이니 가지고만 있으라며 아치볼드가 건네준 것이었다.
에바리스트는 바깥을 내다보았다.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어두컴컴했다. 망설이다가 그는 권총을 들어 품에 넣었다.

‘밤늦게 숲을 돌아다니는 자는 전부 저렇게 되지.’

팔다리가 떨어져 있던 시체가 떠올랐다. 그는 비록 건물로부터 멀리 떨어질 생각이 없었지만, 만일을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에바리스트는 손전등을 들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문을 열어 밖으로 걸음을 내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름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밀려들었다. 혹시라도 건물 안의 누군가를 깨울까 조심하면서 그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아침에 그렇게 기록보관소를 뛰쳐나온 후로는 온종일 정신을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른 채 지냈다. 그 와중에도 아치볼드와 마주치는 것이 껄끄러워서 슬슬 그를 피해 다니다 보니 끼니도 변변히 챙기지 못한 채였다. 새삼 배가 고팠지만 지금 부엌으로 내려간다 해도 먹을 것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길 끝에 주저앉아 그는 저 멀리 보이는 숲으로 멍하니 시선을 고정했다. 빛에 끌려 날아온 날벌레가 그의 손전등 주위를 맴돌았다.

‘생각이 많구나. 너무 많아. 그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으나…….’

베른하드의 목소리가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 맴돌았다. 10년도 더 전의 기억이었다.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도,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도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베른하드의 밑에서 그는 각종 금서, 일리야의 저작들, 은밀하게 출판되고 유통되던 각종 잡지를 접했다. 억압이 왜 잘못되었는지, 정부가 하고자 하는 것이 결국 무엇인지, 왜 저항해야 하는지 배운 곳도 그곳이었다.

그러나 결국엔 다 옛일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고 손전등을 집어 들었다. 쓸데없는 상념은 접어두고 이쯤에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가 에바리스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수풀 사이에서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기척이 제법 가까웠다. 순식간에 긴장이 온몸을 훑어 내렸다. 그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며 천천히 손전등을 인기척이 났던 곳으로 향했다. 괴물에 대해 떠들던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이 섬에서 도망치려는 자는 살아서 나가지 못하지.’

“…!!”

불빛이 어떤 형체를 스쳤다. 에바리스트가 본 건 죄수복이었다. 그걸 확인한 순간 그는 상대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죄수 하나가 또 탈옥을 시도한 모양이었다. 무슨 배짱이냐고 비웃고 싶었지만 아주 낮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어떤 사람들은 아주 쉽게 위험을 무릅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아주 잘 알았다.

“거기 서!!!”

에바리스트는 소리치며 뛰었다. 손전등의 불빛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면서 사람의 형상이 잠깐잠깐 드러났다. 그 사이 미처 피하지 못한 나뭇가지가 그의 뺨을 긁고 지나갔다. 그의 고함을 들었는지 형무소 건물의 창에 하나둘씩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 빛에 힘입어 희미하게 시야가 밝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상대가 사라졌다. 어느새 숲의 초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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