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사라진 죄수는 없어.”
피곤한 듯 눈두덩 근처를 눌러대며 아치볼드는 느릿하게 입을 떼었다.
“너도 같이 확인했으니 잘 알겠지.”
에바리스트의 고함을 듣고 깨어났다던 그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 숲의 입구 언저리에서 헤매고 있던 에바리스트를 발견하고 자초지종을 들은 후 즉각 죄수들의 수를 세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아치볼드의 말은 사실이었다. 에바리스트는 가만히 시선을 떨구었다. 납득할 수 없었다. 자신이 본 건 분명 죄수복을 걸친 인간의 형상이었다.
“전 제가 본 걸 그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아.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뭔가 잘못 본 게 아닐까? 에바리스트. 솔직히 어제저녁부터 좀 과민해져 있는 것 같은데 말야-”
“괴물이야.”
아치볼드의 말을 끊고 투박한 목소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돌아보자 죄수 하나가 창살에 매달려 이쪽을 바라보며 히죽 웃고 있었다. 다비오였다. 여기에 가장 오래 있었지만, 간혹 기행에 가까운 행동을 해서 다른 죄수들에게조차 괴인 취급을 받는 사람이었다.
“제가 본 건 분명 인간이었습니다.”
에바리스트는 반박했다. 그러자 다비오는 놀랍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겠지. 인간의 모습인데 인간이 아니니 괴물이라고 불러야겠지. 이봐, 젊은 양반. 내가 괴물에 대해 이야길 해 줄까?”
그는 창살 사이로 손을 뻗어 에바리스트에게 손짓했다. 에바리스트는 아치볼드를 흘끔 바라보았다. 아치볼드는 그를 말리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그는 괴물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결국 아치볼드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물러났다.
“이따 내 방에서 잠깐 보자고. 내 방 어딘지 알지?”
다비오 말은 너무 새겨듣지 말라며 그의 귀에 속삭인 아치볼드는 그의 등을 한번 툭 치고는 그곳을 벗어났다. 아치볼드가 충분히 멀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에바리스트는 의자를 끌고 다비오의 방 가까이 다가갔다.
“괴물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까?”
창살에 기대어 앉은 채로 다비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치볼드 그 양반이 참 착하긴 하지. 그래도 알려져야 할 건 알려져야 해. 그래. 괴물에 대한 이야기. 어디서부터 해야 하나. 인간, 오. 맞아.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자네가 그렇게 보았다면 그랬겠지.”
마치 놀리는 것처럼 다비오는 씨익 웃었다.
“아니, 아니. 그런 표정 할 필요 없어. 내가 괜히 이런다고 생각하나? 달라. 자네 말고도 아주 예전엔 좀 더 있었어. 괴물을 보고도 살아 돌아온 사람들 말야. 물론 지금은 다 사라졌지.”
어디 보자, 하고 다비오는 손가락을 꼽았다.
“죽었고, 죽었고… 죽었군.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렇지? 그들이 뭐라고 했을 것 같나? 응? 그 사람들 말야. 다 다른 식으로 이야길 했어. 그게 무슨 뜻일까?”
“……사람마다 괴물이 다르게 보인다는 말입니까?”
“예전에는 말야, 아주 예전에는 그렇게 무작정 사람들을 죽이지도 않았다네. 그땐 괴물을 인간이라 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어. 보통은 짐승이라 했고…, 짐승을 닮았다고들 했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괴물을 인간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괴물이 죽이는 사람이 점점 많아질 때쯤 말이야. 보자.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아무튼 그때부터 죄수들이 밖에 나가는 것도 금지되었지. 젊은 양반은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나?”
다비오의 말은 두서가 없었다. 말의 요지조차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서 에바리스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는 낄낄거리며 웃다가 이내 사레가 들렸는지 몸을 굽히고 괴롭게 콜록거렸다. 과연 괴인이라 불릴 만한 모습이었다.
“누군가 그 짐승에게 저주를 건 게야. 그 저주가 괴물의 얼굴을 없애버렸어. 대신에 괴물은 환상과 공포를 뒤집어쓴 거지. 그 공포는 지금까지도 계속 커지고 있어. 숲은 괴물의 영역이야. 그곳은 자네가 아는 숲과는 아주 다르지. 그래. 그래서 자네가 본 건 인간이라고.”
다비오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가늘게 웃고 있었다. 조금 섬뜩해서 에바리스트는 뒤로 물러났다.
“괴물에게 너무 가까이 가지 말게. 한 번 놓아주었다고 계속 괜찮을 것 같나? 자네가 본 모습, ……그게 자네 죄의 형상이야. 자넨 누굴 보았나? 자네도 숨기는 게 많겠구만. 참 많겠어.”
그 말을 끝으로 다비오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더는 말하지 않았고 에바리스트가 그에게서 알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없었다. 말은 거창했으나 결국엔 제멋대로의 헛소리였다. 다만 괴물이 취하고 있는 형상이 죄의 형상이라는 소리를 그는 그저 넘겨버릴 수가 없었다. 손전등 빛에 잠깐 보였던 괴물의 머리카락은 금색이었다. 그에겐 아주 익숙한 색이었다.
아치볼드는 침대에 앉은 채 졸고 있었다. 열린 문을 사이에 두고 에바리스트가 들어가도 되는지를 고민하는 사이 그는 퍼뜩 놀라 깨더니 에바리스트를 보고 멋쩍은 듯 들어오라 손짓했다.
“이야기는 좀 들었어? 그래. 뭐라고 하던?”
형무소장의 방이라고 해도 에바리스트의 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아치볼드가 접이식 철제의자를 펴고 나서야 그들은 겨우 대화할만한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에바리스트는 일부러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저주라던가, 환상이라던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예전에는 괴물이 사람을 습격하는 일이 적었다고도….”
몇 가지 이야기는 뺀 채였다. 이를테면 죄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그를 보고 숨기고 있는 게 많을 거라는 이야기 같은. 아치볼드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불쌍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다비오는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곳에 있었어. 처음에는 어떻게든 탈출해보려고 했다는군.”
“감옥에서 말입니까?”
“정확히는 이 섬에서. 수송용 헬기를 탈취할 계획까지 세웠는데 잘 안 된 모양이야. 그러고 나서는 어떻게 했는지 아나? 정부에게 계속 편지를 썼어. 이제 뜻을 꺾고 참회했으니까 돌려보내 달라거나, 돌아가면 정부에 충성하겠다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군요.”
“봉투조차 뜯기지 않았지. 말했잖아. 그들은 여기에 관심 없다고. 내가 들어오고 나서도 한 삼 년쯤 될 때까지 그렇게 매일같이 편지를 쓰다가 어느 순간 그만두고선 그 뒤부터 정신이 저렇게 좀 왔다 갔다 해.”
다비오에게서 받은 인상과는 별개로, 씁쓸한 이야기였다. 에바리스트는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잠시 고개를 숙여 맞잡은 양손 위에 이마를 대고 있던 아치볼드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여기 왜 왔는지 자네는 못 들었을 테지?”
본론은 이 이야기였던 모양이었다. 에바리스트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십 년 전에 난 비밀스럽게 조직 하나를 지원했어. 그게 들켜서 여기로 오게 된 거야. 무슨 조직이었느냐곤 묻지 말게. 자네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테니까. …아무튼 십 년 전엔 정부의 감시도 덜 심했고 그래서 걸리지 않을 줄 알았어. 정부 아래에서 일하고 있어도 정부가 하는 일이 전부 옳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정부가 숨기려던 것 하나를 조직 쪽에 흘렸는데 그게 들통 났더군.”
“십 년 전이면……무기 교환 건입니까?”
그는 되물었다. 떠오르는 건 그것뿐이었다. 정부가 국영사업 하나를 담보로 외국에서 좀 더 살상력이 강하던 무기를 들여오려던 게 문제가 되었던 사건이었다. 파장이 제법 커서 잊히지도 않는 일이었다. 아치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네. 아니. 그쪽이었으면 당연한 일인가. ……아무튼 내 말은 그래.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반정부 운동이랑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고, 여기에 처박힌 이상 정부가 이 이상 해코지를 하거나 할 일은 없을 테니 그렇게 당황하거나 피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야.”
그런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그는 이미 아치볼드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할 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에바리스트는 갈등했다. 다비오의 말대로 아치볼드는 선량한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가 그 주제를 피하는 이유는 아치볼드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순진한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그 주제가 불러일으키는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에바리스트는 결국 입에 거짓을 담기로 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숨기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랬나 봅니다. 그렇게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고…. 뭔가를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나와 버렸거든요.”
“……그래. 8년 전부터 감시가 강화되었다며? 그때 한번 우르르 잡혀 들어왔었지. 그 이후로는 아마 활동하기 힘들었을 테니까. …오늘 밤은 일찍 자. 어제처럼 위험하게 돌아다니지 말고,”
아치볼드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슬슬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섬이 또다시 하루를 시작해야 할 때였다. 에바리스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치볼드의 말을 지킬 생각은 없었다. 그에겐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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