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Chapter 5

늦은 밤이었다. 여전히 하늘은 맑았다. 에바리스트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숲 앞에 서 있었다.

다비오의 말마따나 한번 살아 돌아왔다고 해서 이번에도 살아서 돌아오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래도 에바리스트는 그 괴물의 얼굴을 확인해야 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형상이 과연 맞을 것인지. 위험한 호기심이라고 해도 좋았다. 여전히 권총은 가지고 있었지만, 성인의 목을 단번에 부러뜨릴 수 있는 괴물을 상대로는 쓸모없는 물건일지도 몰랐다.

‘그러면 이대로 죽는 거겠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그는 숲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료실 안에 있던 지도에 의하면 숲의 면적은 이 섬의 반 정도였다. 한 번도 숲 안까지 들어가 본 적은 없었지만 섬의 크기를 고려해본다면 설사 숲 안에서 길을 잃는다고 해도 그렇게 걱정할 정도는 아닐 터였다. 그러나 기상 시간 전에 다시 방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아치볼드가 눈치챌 것이 뻔했기 때문에 에바리스트는 나무에 끈을 매어 자신이 들어온 길을 표시했다.

단 이것도 괴물을 마주치고도 살아 돌아온다는 전제 하의 일이었지만.

“…….”

에바리스트는 문득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나무가 제멋대로 나 있는 숲치고는 걷기가 힘들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매일같이 밟아 길을 내놓은 것처럼 그가 밟고 있는 곳은 풀 한 포기 없이 흙으로 잘 다져져 있었다. 여길 매일같이 오갈 존재는 하나뿐이었다. 점점 괴물에게로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이리라, 에바리스트는 생각했다.

그 순간 그는 풀숲 너머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둘 사이의 거리는 아주 가까웠다. 벌레들의 소리가 잦아들자 상대방의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에바리스트는 침착하려 노력했지만, 점차 심장박동이 거세지고 있었다. 떨리는 손을 움직여 에바리스트는 천천히 손전등을 들어 올렸다.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해야 했다. 빛 자락에 상대방의 손끝이 들어왔다. 낯익은 죄수복이었다.

그 찰나의 시간에, 괴물이 움직였다.

순식간이었다. 뒤로 넘어가는 자신의 몸을 느끼면서도 에바리스트는 소리 한번 지르지 못했다. 뻣뻣하게 굳은 손에서 손전등이 굴러떨어졌다. 밤하늘이 눈 한가득 들어왔다. 무리 지어 빛나는 별들이 아름다웠다. 난 이렇게 죽는구나. 그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주변이 고요했다. 에바리스트는 눈을 떴다. 검은 형체가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를 덮쳐 누른 괴물은 나지막하게 그르렁대는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그를 죽일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얼굴의 윤곽선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에바리스트는 손을 뻗어 주변을 더듬었다. 다행히 손전등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었다. 스위치를 누르자 주변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아이자크.”

금발의 청년 하나가 눈이 부신 듯 얼굴을 찌푸렸다. 에바리스트는 저도 모르게 그를 부르고는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예상했던 터라 놀랍진 않았다. 다만 가슴이 먹먹했다.






아치볼드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취미를 그걸로 정했다고?”

에바리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그는 아치볼드에게 기록보관소에 있는 것들이 흥미로우니 남는 시간 동안 마음대로 기록들을 구경할 수 있도록 그곳의 열쇠를 부탁한 참이었다. 물론 거짓이었다. 그는 거기서 남들의 방해 없이 모자란 잠을 보충할 생각이었다. 혹은 괴물에 대한 것을 기록으로 남겨두거나. 아무튼 그에겐 혼자서 오래 한 곳에 틀어박혀도 의심받지 않을 명분이 필요했다.

“허. 하기야 그곳이 시간 때우긴 좋긴 하지. 자, 여기 있네.”

열쇠 꾸러미를 한참을 뒤져 보관소의 열쇠를 찾아 건네주면서도 아치볼드는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에바리스트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날도 죽지 않고 되돌아왔다.

얼굴을 확인한 에바리스트가 그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음에도 괴물은 그의 목을 부러뜨리는 대신 얌전히 에바리스트 위에서 내려와 그의 곁에 주저앉았다. 괴물의 얼굴이 아이자크를 닮았다는 것은 확인했으나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에바리스트는 꽤 우습게도 널브러진 자세 그대로 한참을 누워 있었다. 동이 틀 때가 되어 숲을 빠져나올 때에도 괴물은 그저 숲의 초입까지 배웅이라도 하듯 쫄래쫄래 그를 따라왔다.

아이자크를 닮긴 했으나 그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우선 괴물은 인간의 언어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때로 목을 울려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사실 나는 그가 정말로 아이자크를 닮았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8년 전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인상이 8년 전 그의 모습과 흡사했기 때문에 외형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면 저런 얼굴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진실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에바리스트는 기록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록보관소 내부는 적막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진 모르겠지만 괴물은 그를 죽일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에 대해 기록을 남기는 것이 어떠한가. 오전 내내 고민하던 끝에 에바리스트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괴물에 대해 다비오가 말하는 것들은 태반이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고 보관소 내에도 괴물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었다.

에바리스트는 괴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고 그렇다면 남는 방법은 직접 관찰하는 것뿐이었다. 가능하다면 오늘 밤에도.

공책을 덮은 에바리스트는 책상에 엎드렸다. 금세 잠이 몰려왔다.






나는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그에게 언제 다시 오겠다던가 또 보자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괴물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존재라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탓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괴물이 나의 말을 알아듣고 몸짓으로나마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에바리스트는 잠시 펜을 멈추었다.

기록했던 것처럼 어젯밤 괴물은 숲의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놀란 에바리스트가 잠시 멈칫거리는 사이에 손전등의 불빛이 눈부신지 몇 번 눈을 깜박거린 괴물은 천천히 다가오더니 대뜸 덥석 에바리스트를 끌어안았다. 그런 행동마저도 묘하게 아이자크를 닮아 있었다. 무심코 괴물의 머리를 쓰다듬은 그가 당황하는 사이 괴물은 에바리스트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숲 속으로 들어갔다.

챙겨온 물로 잠시 입을 축이곤 에바리스트는 다시 펜을 놀리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몇 명이고 인간을 죽여 왔던 것을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행동엔 천진한 데가 있었다. 그는 나를 이끌고 숲을 돌아다녔는데 숲의 모든 길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익숙했다. 그는 나를 넓은 바위가 있는 공터로 데려갔고 그제야 나는 바위에 앉아 그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그가 입고 있던 죄수복은 지난번 죽은 자의 것이었다.

그 죄수복 때문에 에바리스트가 괴물을 죄수로 착각하면서 결국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셈이었으니 참으로 얄궂은 일이었다. 그는 책상 위에 올려놓은 다른 공책을 넘겨보았다. 그 공책은 괴물과 관련하여 아치볼드 전에 있던 형무소장이 거의 유일하게 남겨놓은 기록이었다. 그래 봤자 괴물이라는 제목 아래 이미 그가 죄수들에게서 들었던 몇몇 사실들과 사람들의 이름을 줄줄이 늘어놓은 것에 불과했지만.

재미삼아서, 에바리스트는 그 기록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름을 보고서 사본 속에서 찾아보았다. 몇몇은 그 형무소장이 재직하던 시기의 사람이었고 몇몇은 그보다도 더 전에 있던 사람이었다. 전부 사인이 사고사인 것을 보면 아마 괴물의 희생자들인 모양이었다. 다시 그 부분을 표시해놓은 채 옛 기록을 잘 덮어두고, 그는 기억의 마지막 부분을 써 내렸다.

그는 내 곁에 계속 머무르고 싶어 하는 것 같았고 가끔 머리를 부비거나 손을 잡는 등의 친근한 행동을 했다. 그러나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가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아주 단편적인 것밖에 얻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소득은 충분할 것이다. 다음번에는 더 많은 것을 알아내기를 바라고 있다. 예컨대 낮 동안 그가 머무는 곳이라던가.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 에바리스트는 기억을 떠올렸다.
괴물도 음식을 섭취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는 어제 비상식량을 들고 갔다. 이곳의 식량은 전부 장기간의 보존을 위해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포장되어있었다. 그러나 괴물은 그 점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다는 듯 포장을 풀고선 역시나 익숙하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결코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는 들고 있던 펜으로 책상을 몇 번 두드렸다. 결국 그의 기록에는 한 줄이 더 추가되었다.

인간의 음식은 익숙하게 먹을 줄 알았다. 그러나 어떻게 포장을 뜯을 줄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좀 더 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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