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Chapter 7

에바리스트는 아이자크에 대해 기록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가 얼마나 ‘인간’다운지를 깨닫고 나자 이전처럼 그를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없었다. 에바리스트는 이제 괴물에 대한 기록을 찾으려는 노력도, 무언가를 캐 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가 숲 속에 머무르는 시간이, 그리고 아이자크에게 말을 거는 횟수가 늘어났다. 대답이 없을 거란 걸 알면서도.

그럴수록 아이자크는 점차 인간과 흡사해져 갔다. 그들의 일상에는 크게 바뀐 점이 없어서 그들은 여전히 숲 속 어딘가에 나란히 주저앉아 고요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곤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이자크의 표정과 행동은 놀랄 만큼 섬세해져 있었다. 단순한 모방이라 보기엔 지나치게 다채로운 변화였다.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의심이 다시금 스멀스멀 피어올랐으나 점차 다정해지는 배려가 기꺼워 에바리스트는 모른 척 눈을 돌렸다.

점점 아이자크와의 시간은 에바리스트에게 일종의 도피처가 되었다. 아주 가끔은 아이자크에게 진짜 아이자크가 겹쳐 보일 때도 있었다.

“아이자크는 살아있을까?”

처음으로 에바리스트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어보았다. 8년 전 이후로는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 어쩌다 베른하드와 한 번 연락이 되어 그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베른하드는 모른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아이자크는 말없이 웃고는 에바리스트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에바리스트는 아이자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보고 있으면 아이자크가 뒤집어쓰고 있는 인간적인 얼굴 속에서 간혹 짐승만이 내보일 수 있는 무기질적인 표정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가 아이자크를 인간이 아니라고 자각할 수 있는 건 그 잠시간뿐이었다.

“넌 어째서 괴물이 된 걸까? 난 잘 모르겠다. 애초에 네가 괴물이기는 했던 걸까? 내가 아는 건 누군가는 그 죄수를 죽이고 시체를 찢어버렸다는 거고, 네가 그 죄수의 죄수복을 입고 있다는 것뿐이야. 그게 그 괴물이 너라는 증거는 아닐지도 모르지.”

혹시 아이자크 외에도 흉포한 무언가가 있어서, 이제까지 일어났던 모든 사건은 그가 벌인 짓은 아니었을까. 이런 가정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제멋대로 입을 움직였다. 그 사건 이후 감히 감옥을 탈출하려 시도한 죄수는 없었고 그래서 괴물에게 죽은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안온한 생활이 계속되고 나자 아이자크가 정말로 괴물이었는지조차도 에바리스트는 확신할 수 없었다.

대답 대신 그르렁거리던 아이자크는 그에게 입 맞추었다. 슬쩍 입술을 가져다 대기만 하던 것이 좀 더 깊은 키스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처음 아이자크가 키스해왔을 때 에바리스트는 당황했지만, 그는 아이자크를 밀어내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익숙해졌다.

8년 전, 먼저 돌아선 쪽은 그였다. 그가 아이자크를 버린 거였다. 그랬기 때문에 이번에야말로 에바리스트는 차마 어떤 형태로든지 아이자크를 밀어낼 수 없었다.

설령 상대가 아이자크를 닮은 가짜에 불과하더라도.






아치볼드가 말했다.

“밤에 돌아다니는 거, 이제는 그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말없이 음식을 씹고 있던 에바리스트는 고개를 들어 아치볼드를 바라보았다. 아치볼드는 근심스럽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안 걸까. 그는 눈을 깜박였다. 에바리스트는 언제나 정해진 시각에 조심스럽게 건물을 빠져나가 해가 채 뜨기도 전에 다시 건물로 돌아왔고 지리에 익숙해진 뒤로는 가급적 손전등도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무엇이든 다른 사람에게 들킬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기에 그는 아치볼드가 눈치챌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바리스트의 표정을 본 아치볼드는 샐러드에 포크를 쿡 찍으며 자신의 감을 그렇게 무시하면 안 된다고 농담을 건넸다.

“옷에 그렇게 풀물이 들어오는데 어떻게 눈치를 못 챌 수 있겠어.”

“아…….”

저도 모르게 에바리스트는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그러고 보니 풀물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치볼드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성인한테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것도 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놔뒀는데, 자네 지금 안색이 영 아니야. 밤을 새워서 피곤해 보이는 게 아니라 뭔가….”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다가 결국엔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했는지 아치볼드는 흠, 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에바리스트는 일단 입을 다물었다. 아이자크를 만나는 것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걱정해주는 사람에게 괜히 반발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튼 그렇다고. 아. 그리고 내일은 새로 죄수가 올 거니까 미리 준비해둬. 거 참. 항상 느끼는 거지만 착잡하구만.”

아치볼드는 포크로 샐러드를 휘저으면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누군가는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좀 기쁘기도 한데, 여기로 계속 사람이 온다는 건 역시 여전히 정부가 굳건하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 말야.”

에바리스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치볼드의 말이 옳았다. 누군가는 쉼 없이 에바리스트가 예전에 포기했던 꿈을 좇을 터였다. 어떤 위험과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알면서도. 에바리스트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아치볼드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당신은, …세상이 바뀔 거라고 믿습니까?”

아치볼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무언가가 당장 바뀔 거라고 믿었던 건 젊었을 때뿐이지.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그냥……. 그저 살 수 있는 만큼 힘껏 사는 것뿐이네.”

순식간에 베른하드가 떠올랐다.

‘지금은 마음껏 꿈꾸어도 좋다. 에바리스트. 그러나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큰 법이지. 나도 한때는 너와 같았지만……. 지금은 그저 내가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을 할 뿐이다.’

다른 그의 또래들과는 달리 베른하드는 한창 활동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때를 제외하고는 일선에 나간 적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뒤에 숨은 겁쟁이라 평했지만 그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묵묵했다. 그는 말하곤 했다. 누군가는 다음 세대를 키워야 한다고. 그래야 이 노력이 진정으로 무의미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고.

에바리스트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도 한때는 언젠가 세상을 바꿀 거라고, 우리가 하는 일은 옳을 거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아치볼드의 얼굴 위로 잠시 연민과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가만히 에바리스트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조용히 식당을 빠져나갔다.





그날 밤, 에바리스트는 악몽을 꾸었다. 그가 이곳에 발령받기 직전의 일이었다.
그 계절의 시위는 언제나 다른 때보다도 더 격렬하기 마련이었다. 사람들은 항상 새봄을 갈구하곤 했다. 그래서 그는 연일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러다 그는 우연히 신문을 보았다. 신문의 헤드라인에는 반정부 테러가 극성이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신문을 펼쳤다. 저쪽 구역에서 일을 좀 크게 만들었다더니 이런 식으로 얼버무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아래 실린 사진이 그의 움직임을 멎게 했다.

피 흘리며 눈 감은 채 쓰러져 있는 남자의 흑백 사진이었다. 사진의 아래에는 테러범 중 한 명이 진압과정에서 사살당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정부가 이용하기 좋아하는, 자극적이고 사람들에게 쉽게 위압감을 주는 사진이었다. 그러나 에바리스트에겐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사진의 주인공은 그에게 낯익은 사람이었다. 베른하드의 아래에서 한때 몸담고 있었던 동지 중 하나였다. 사진은 흑백이어도 그건 에바리스트가 그를 알아보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장면이 바뀌었다.

에바리스트는 경찰서의 자료를 뒤적이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접근해서는 안 되는 구역이었다. 그는 자신이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해당 사건의 사망자 및 구속자 명단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사진 속의 인물은 아이자크와 꽤 가깝게 지내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알고 싶었다. 아이자크는 무사한지, 혹시 이 사건과 관련된 것은 아닌지.

정신없이 자료를 뒤지던 그의 눈앞으로 신문기사가 날아들었다. 에바리스트는 무심코 그 기사를 집어들었다. 사진의 남자가 어느새 아이자크로 바뀌어 있었다. 사진 속 아이자크는 눈을 뜨더니 에바리스트에게 물었다.

‘왜 나를 배신한 거야?’

에바리스트는 잠에서 깨어났다.

물을 먹은 솜처럼 온몸이 무거웠다. 그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손에 땀이 묻어나왔다. 비틀거리며 에바리스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미 해가 떠 있었다. 빼도 박도 못하게 늦잠이었다. 그는 서둘러 본관으로 향했지만 아치볼드는 먼저 비행장으로 가버린 건지 보이지 않았다. 에바리스트는 곧바로 비행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거기엔 악몽보다 더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죄수복을 입은 누군가가 경비대원의 손에 끌려 나오고 있었다. 그와 에바리스트의 눈이 마주쳤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 상대방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에바리스트는 경악했다. 그는 저기 있을 리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에바리스트의 심중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상대방이 먼저 그를 불렀다.

“설마, 에바리스트?”

아치볼드가 그를 돌아보았다.

순식간에 어제의 꿈이 떠올랐다. 신문기사의 사진 속에서 볼품없이 눈을 감고 쓰러져 있던 건 분명히 그였다. 에바리스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레온. …살아있었어?”

그, 레온은 에바리스트에게 다가오려 했지만 곧바로 경비대원들에게 제지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도망갈 테니 놓으라며 짜증을 낸 레온은 수갑을 찬 채로 에바리스트에게 다가왔다. 뒤에서 아치볼드가 경비대원을 말리는 모습이 생뚱맞게도 눈에 들어왔다.

“여어. 이게 얼마 만이야.”

“분명 신문기사에서…….”

“아. 그거. 안 그래도 골치 아팠지. 어쩌다가 나랑 닮은 사람이 찍혀서 말이야. 날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나보고 살아있느냐고 묻는 통에 나중엔 대답하기 귀찮을 정도였어. 그나저나 그 날 이후로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대충 알겠군.”

레온은 에바리스트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비웃음을 띄웠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아이자크는. 혹시 소식 들은 것 없어?”

그 말을 들은 레온은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별안간 미간을 찌푸렸다.

“몰라. 그 녀석도 그 날 이후 안 보이더니 그대로 사라졌어. 나는 당연히 너랑 같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 둘이 징하게도 붙어 다녔잖아? 그것보단 이제까지 계속 내가 궁금한 게 있었는데 그걸 오늘에서야 답을 찾은 것 같거든?”

레온이 에바리스트에게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눈매가 사나웠다. 손이 부자유스럽지만 않았다면 단박에 에바리스트의 멱살을 잡고도 남을 기세였다. 레온이 가만히 속삭였다.

“8년 전에 정부 쪽에 정보 흘린 거, 너지?”

어딘가 쾅-하고 두드려 맞은 것 같았다. 에바리스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입술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건 내가 아니었어.”

이것만은, 결단코 진실이었다.

“내가, 아니었다고.”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한 에바리스트는 뒤돌아 비행장을 빠져나왔다.

“어, 야!!”

뒤에서 당황한 듯 자신을 부르는 레온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점차 빨라지던 걸음은 어느새 뜀박질이 되어 있었다. 에바리스트는 달렸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왔다.

목적지는 숲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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