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Epilogue

아치볼드는 기록보관소 안에 있었다. 그의 손길을 따라 파르륵, 종이가 넘어갔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에바리스트의 기록과 그가 모았던 자료들이었다.

“뭘 하나 했더니 이런 걸 하고 있었을 줄이야.”

아치볼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통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레온을 내버려둔 채 아치볼드는 섬 전체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 어디에도 에바리스트는 없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시체는커녕 흔적 하나마저 발견되지 않았다. 완벽한 실종상태였다. 물론 짐작 가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이 섬 주변의 절벽은 뛰어내리기에 참 좋았다.

레온은 지금까지도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자책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초지종을 대충 들은 아치볼드는 레온이 뭔가를 잘못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문제는 에바리스트의 상태였다. 안색이 좋지 않을 때, 아니 그전부터 좀 더 신경 써야 했다고 아치볼드는 혀를 끌끌 찼다. 조용하고 말을 아끼는 것이 본래 성격이겠거니 하고 내버려두었는데 실은 그게 안에서부터 곪아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혹은, 여기에 오기 전부터 이미 곪아 있었거나. 에바리스트가 가끔 보이곤 하던 언행을 돌이켜보면 충분히 그럴 법도 했다.

“결국 두 달을 못 넘겼나.”

여기에 온 많은 사람들이 그랬기 때문에 별로 특별할 건 없었지만 역시나 그것과는 별개로 누군가가 죽는다는 건 마음 아픈 일이었다. 아치볼드는 에바리스트의 기록을 읽어보았다.

“어디 보자. 아이자크? …어딘가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인데 이거.”

아치볼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에바리스트가 괴물에게 붙여주었다던 이름은 분명히 그에게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아이자크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이기는 했으나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아치볼드는 명부를 꺼내어 가장 최근의 기록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이곳에 들어온 모든 사람의 기록이 보관된 두꺼운 파일이 팔락 팔락 넘어갔다.

“역시. 그런 이름을 가진 죄수 하나가 있긴 했어. 3년 전인가, 그게 벌써.”

아치볼드는 무릎을 탁 쳤다. 비록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죽는 바람에 부를 일이 거의 없어 한동안 잊고 있던 이름이었지만 한번 여기에 온 죄수의 이름을 아치볼드가 잊을 리 없었다. 문득 아치볼드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 즉시 그는 유품상자를 꺼내어 이리저리 뒤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가 꺼낸 서류봉투에는 아이자크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아치볼드는 서류봉투의 봉인을 풀었다. 스르륵, 무언가가 미끄러졌다.

그 한 장의 사진을 아치볼드는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미처 찍힐 줄 몰랐다는 듯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명의 소년이 담겨 있었다.

“얼굴은 별로 안 변했네.”

아치볼드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보아도 그건 에바리스트였다. 아치볼드는 사진을 뒤집었다. 그곳에는 글귀 하나가 남아있었다.

‘네가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말없이, 아치볼드는 다시 사진을 서류봉투에 넣었다. 이어 그는 다른 서류봉투를 꺼내어 에바리스트의 이름을 적고는 그가 남겼던 기록들을 넣어 봉했다. 에바리스트가 남긴 유품은 이 정도가 다였다. 개인적인 물품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아치볼드는 유물상자를 다시 정리했다. 이로써 한동안, 호기심에 찬 누군가가 열어보지 않는 이상은 그들의 기록은 이곳에 묻혀있을 터였다. 그는 기록보관소의 문을 닫고는 다시 자물쇠를 굳게 채웠다.

아치볼드의 발걸음이 점차 멀어졌다. 기록보관소는 다시 고요 속에 잠겼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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