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도전 1(2023년)


9월 24일~9월 25일 / 세헤라자데

세헤라자데는 이야기하는 재주 하나로 배신감에 잔혹해진 왕의 곁에서 천일하고도 하루를 버텼다. 그는 그의 이야기가 왕의 흥미를 언제까지고 끌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있었을까? 

"차유진."

하드를 입에 물고 있던 차유진이 고개를 홱 돌린다. 자를 시기를 놓쳐 조금 덥수룩해진 머리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둘 다 데뷔조인 만큼 곧 엄격한 관리가 이어지겠지만, 아직까지는 아이스크림같이 단 걸 즐길 시간이 있었다.

"만약에, 아이돌이 더이상 재미있지 않다면 넌 어떡할 거야?"

재밌는 거 좋아. 차유진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었다. 좋고 싫고를 가감없이 표현해 상대를 당황케 하기도 했다. 재밌을 것 같아서 이 길을 선택했다던 차유진의 말은 연습생 모두가 들었다. 그러니 궁금함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만약 더이상 재밌지 않다면 차유진은 이 길을 그만둘까? 마치 아이돌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데도?

"왜 물어? 나 지금 재밌어! "

"지금은 마냥 재밌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 지 모르잖아."

"김래빈 이상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 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하는건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건 그 때 다시 생각해도 되는 거 아냐?] 지금 생각 필요 안 해!"

"필요 없어가 올바른 표현이야. 그리고 차유진, 그렇게 아무 계획 없이 살면....!"

안돼? 천진한 얼굴이 자신을 향해 묻는다. 어느덧 다 먹은 하드의 나무 막대기를 장난스레 휘두르며. 당연히 안 돼, 하고 대답하려던 입이 다물린다. 사실은 잘 모르겠다. 차유진은 이제까지 항상 마땅한 계획이 없어도 대책없이 잘 했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자신의 결정에 후회가 없는 것처럼 굴었다. 아마 그는 괜찮을 것이다. 차유진이 떠나 괜찮지 않은 쪽을 꼽자면 오히려 자신이다.

"내 욕심인 건 잘 알지만 나는 네가 가급적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옥상에 털썩 주저앉은 차유진 옆에 나란히 쪼그려앉으며 그는 입을 열었다. 왜? 다시 질문이 돌아왔다. 그는 순순히 대답했다.

"너는 재능이 있고 그걸 썩히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니까."

"썩...?"

"재능을 썩힌다. 가진 재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야."

그는 종종 차유진에게서 아득한 지평을 보았다. 막막하고 동시에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는 연습생이었지만 동시에 프로듀서를 지망하던 사람이었고, 여전히 종종 프로듀서의 눈으로 사람을 봤다. 차유진은 놓고 싶지 않은 재원이었다. 가끔은 곤란하게 튀겠지. 하지만 차유진으로 생겨나는 생동감을, 그 에너지와 힘을 아쉬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와 오래 가까이 지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소망은 오히려 부차적이다.

"Oh. 맞아. 나 재능 많아. 칭찬 고마워! [하지만 나는 내 관객들이 내 무대를 보고 즐겁고 행복하길 바라. 내가 즐겁지 않은데 그들이 어떻게 즐거워하겠어? 그건 재능이랑 별개의 문제지.]"

"아니, 이건 칭찬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리고 뒷말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차유진 네 말은 너무 빠르고, 내가 모르는 어휘가 너무 많아."

차유진의 말은 파파고를 돌려도 제대로 번역이 되지 않는다. 몇 번 시도해봤다가 오히려 오해만 몇 번 쌓이게 된 이후 김래빈은 차유진을 대할 때 번역기를 들지 않았다. 차라리 직접 부딪히는 게 나았다. 다행이 차유진은 낯선 언어로 서툴게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김래빈은 어설픈 언어에서 뜻을 뽑아내고 교정해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끈기가 있었다. 으-음, 하고 시선을 굴리던 차유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다행이도 한글이다. 비록 영어를 모르는 김래빈이 들어도 내용이 반토막은 났어도.

"재미 많이 중요해. 김래빈 나 그만두는 거 싫어? 재밌는 무대 같이 많이 해. 그럼 나 오래 아이돌 해."

차유진은 그와 같이 한 저번 평가가 즐거웠던 모양이다. 그 뒤로 부쩍 그에게 재밌는 걸 같이 하자는 말이 늘었다. 저번의 무대가 즐거웠다는 건 김래빈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무대를 그렇게 꾸릴 자신이 있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 그는 항상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걸 내밀었지만 그게 항상 잘 굴러가지는 않았다.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거야. 하지만 매번 재밌으리라 장담은 못 해."

"걱정 없어! 후회 안 하는 거 중요해. 김래빈 최선 다해. 그럼 재밌어."

김래빈의 어깨에 척 팔을 얹은 차유진이 다른 한쪽 팔을 과장되게 하늘로 뻗는다. 무거우니까 팔로 누르지 마, 대답하면서도 김래빈은 그의 팔을 따라 시선을 하늘로 든다. 차유진에게 즐거움이 중요하다면 무대가 그에게 오래도록 즐거웠으면, 기원하면서. 그리고 아주 약간의 욕심을 담아 그 즐거움의 원인 일부에 저와 제 노래가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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