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도전 1(2023년)


9월 26일 / 금발

※ 주의 : 진성승부 마지막 경연에서 테스타 멤버 각자의 헤어스타일에 대해서는 원작 본문에 명시적으로 언급된 바가 없음. 날조임.


실장님은 그의 얼굴 옆에 헤어 컬러 차트를 여러 번 대보더니 결국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래빈아. 아무리 봐도 너는 노랑이 조금만 쨍하면 얼굴이랑 머리가 동동 뜬다. 블론드 계통이래도 애쉬블론드가 최선이야."

그쵸? 다른 직원들에게까지 동의를 구한 실장님이 양 손에 스프레이를 들었다. 김래빈은 반대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테스타와 지속적으로 손을 맞춰오신 분이고, 스스로의 외모에 완전히 객관적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이럴 땐 전문가의 판단을 신뢰하는 게 옳다. 조심스레 목과 얼굴 일부가 가려지나 싶더니 화학약품 냄새가 강하게 났다. 수 분 후 거울을 봤을 때 김래빈은 제 머리가 끄트머리서부터 애쉬블론드로 물들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염색이 제멋대로 빠진 것처럼 얼룩덜룩했다.

"김래빈 다 했어?"

여전히 목 주변으로 천을 두른 차유진이 고개를 길게 빼어 이쪽을 건너다보더니 오, 하고 알 수 없는 감탄사를 흘린다.

"신기해. 김래빈 black도 white도 아니야!"

기장이 조금 긴 머리를 반쯤 까듯 올려넘기는 손길에 가만히 얼굴을 맡기고 있던 그는 어이없다는듯한 한숨을 폭 흘렸다.

"차유진 너 내가 저번에 시크릿 투톤으로 염색할 때에도 그 이야기 했어. 완전히 똑같이. 기억 안 나?"

그러나 차유진은 반성 한 점 없이 뻔뻔하게 볼때마다 신기해! 하고 외칠 뿐이다. 그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고는 거울을 보았다. 머리카락 끄트머리로 갈수록 애쉬블론드로 얼룩덜룩한 머리에 치켜올라간 눈매를 강조한 메이크업을 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알이 굵은 글리터가 눈가를 따라 흘렀다. 경연곡의 장르를 바꾼 뒤 갈아엎은 컨셉대로였다. 다른 멤버들도 지금쯤 비슷한 분위기로 탈피하고 있으리라. 화려하고, 퇴폐적이고, 조금은 반항적인.

그리고 그런 컨셉은 대체로 차유진에게 잘 어울렸다. 차유진이야 머리색이 좀 강렬해도 얼굴이 죽지 않기도 하고. 컬러차트를 대고 한참을 고민하던 제쪽과는 다르게 차유진 쪽은 좀 다른 의미로 한동안 소란스러웠던 걸 기억한다. 더티블론드도, 백금발도, 말 그대로 금을 녹인듯한 허니블론드도 차유진에게 다 잘 어울릴 걸 알아 그는 그 소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넌 무슨 색인데."

조금 지나서야 김래빈은 앉아있던 의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미 제 차례를 다 끝낸 다른 멤버들이 모여있는 곳을 힐끔 바라보다가 그는 슬금슬금 차유진의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 염색멤버답게 튼튼하고 굵은 모발을 가진 차유진은 심지어 곱슬에다 머리숱도 많았다. 꼼꼼히 색을 묻히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그래도 손이 오가는 걸 보니 막바지였다. 자유롭게 헝클어진 모습을 가장한 고도의 스타일링이 가미된 머리를 대충 흔들며 몸을 일으킨 차유진은 씩 웃었다.

"너, 그러다 기껏 다른 분들께서 힘써주신 스타일링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나 오늘 머리 밝아!"

"너 또 내 말 끊어먹을래?"

"Oh. 나 알았어. 이거 Lemon이야!"

오늘도 성공적인 동문서답이다. 그에게 불쑥 머리를 내민 차유진의 머리에서는 방금 뿌린 컬러 스프레이의 독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저번 금발보다 채도가 높고 밝은 금색을 덧씌운 그 빛깔만큼은, 누구 말마따나 레몬이다. 어떤 기술을 사용한건지 컬러 스프레이를 뿌리고도 포슬해보이는 그 모습을 확인한 김래빈은 화내던 걸 멈추고 조용히 입을 닫았다. 놀랍게도 잘 어울렸다.

차유진은 이제 20대 중반인데도 가끔 아주 앳된 것처럼 보이곤 했다. 아마 차유진이 짓는 풍부한 표정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걸 거라고 그는 추측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밝은 노랑색 머리를 대충 헝클어뜨린 채 검은 가죽자켓을 입고 웃는 차유진은 대충 누구든 자신을 사랑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구김없고 자신만만한 무비스타 같았다.

"김래빈은 어때? 맘에 들어?"

저렇게 가슴을 내민 채 뻔뻔하게 묻는 것마저도. 그는 흠, 하고 고개를 기울이고 상대를 뜯어보았다. 지금은 컨셉에 비해 좀 팔랑대는 감이 있지만 무대에 올라가면 역시 잘 할 거다. 차유진이니까. 그런 걱정을 내려놓고 나면 역시.

"응. 이번엔 다수의 멤버들이 금발을 할 테니 명도나 채도에서 차이가 나게 다양한 색을 시도해보는 건 좋은 일이야. 게다가 넌 다양한 색이 어울리는 편이기도 하니 남들보다 과감해도 좋겠지. 역시 여기가 좋은 판단을 내려주시는 것 같아."

어깨를 으쓱한 차유진이 다른 이들에게로 걸음을 옮기며 다시 묻는다. 그거 말고. 김래빈이 되묻는다. 그거 말고?

"음....."

다시 차유진의 머리를 눈에 담고 있노라면 어쩐지 입에 침이 돈다. 새큼하고 달콤한.

"...레몬사탕 먹고싶어."

그 말에 차유진이 박장대소한다. 김래빈 나랑 똑같은 생각 했어! 이어지는 말은 경쾌하다. 우리 세진 형 사탕 몰래 먹어. 그 사탕 맛있어. 소곤거림까지 한바탕 지나가고 나면 김래빈이 그 무엄함에 기겁하기도 전에 그 말을 죄 들은 배세진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둘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다 들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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