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 강아지 산책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의 집에는 항상 반려견이 있었다. 그의 형제들이 독립하고 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 때의 강아지와 같은 개는 아니다. 아이돌이 꼭 사랑으로 오래 가지 않듯, 개의 수명 역시 그 주인이 얼마나 아껴주었는지와 항상 비례하진 않았다.
차유진은 아주 오랜만에 그의 개, 찰리를 떠올렸다. 찰리는 그가 10대일 때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그 애 덕분에 언젠가는 누구와도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과 예정된 이별에 굴하지 않고 후회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 저기서 날뛰는 개, 렉스는 차유진이 캘리포니아를 떠난 뒤 새로 들여온 개였다. 휴가 때 집을 방문하면서 몇 번은 직접 만났고, 영상통화로는 그보다 더 자주 만났다.
"Stop, Rex."
휙, 휘파람 소리과 함께 떨어진 그의 말에 개가 멈추었다. 앉아. 기다려. 지정된 몇 개의 훈련어로 개를 진정시킨 차유진은 개가 얌전해지자 리드줄을 건네받아 바투 쥐고는 간식을 건넸다. 물을 주고, 털을 이리저리 헝클듯 매만져주면 개는 다시 얌전히 인간들의 옆에 섰다. 마치 리드줄을 제가 끌고갈 듯 신나서 달려가던 방금 전과는 달리.
"차유진 네 말은 정말 금방 듣는구나."
반쯤은 신기해하는 얼굴로, 또 반쯤은 허탈해하는 얼굴로 김래빈이 입을 열었다. 참고로 김래빈은 산책을 도와주겠다고 렉스의 리드줄을 쥐었다가 방금 전 렉스에게 그대로 끌려갈 뻔 했다. 김래빈은 개를 키워본 적 없다고 했지.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김래빈 충분히 단호하지 않았어."
렉스가 흥분한 이유는 집에 사람이 갑자기 늘었기 때문이다. 워낙 인간을 좋아하던 개라 새로운 사람과 함께하는 산책이 너무 신난 모양이었다. 물론 그의 집에 들어온 개들은 기본적인 산책 훈련을 일찍부터 받는 고로 조금만 흥분을 가라앉히면 렉스는 다시 사랑스럽고 다정한 산책메이트가 될 수 있었다. 개와 상호작용한 날이 며칠 안 되는 차유진이 그를 금방 진정시킬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걸 모르는 김래빈은 계속 당황하기만 했고, 높아진 목소리는 개를 진정시키는 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뭐. 개를 키워보지 않았으면 서툴 수 있지. 차유진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의 친애하는 친구는 여전히 골똘한 얼굴이다.
어쨌든 둘은 다시 천천히 걸었다. 종종종종 걸음을 옮기던 개가 나무 밑을 킁킁거리면 잠시 멈추기도 하면서.
"김래빈도 익숙해지면 잘 해. 이거 김래빈 좋아하는 '규칙 준수'랑 많이 안 달라. 원하는 거 확실하게 말하고 지키면 칭찬해. 그게 다야."
그리고 그 방식은 인간 집단을 통솔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는 동일하게 통용된다. 풋볼팀의 쿼터백을 하면서도 차유진은 종종 유사한 방식을 써먹었다. 아마 류청우에게도 익숙하리라. 브이틱의 리더도 개를 기른다고 했던가. 우연이겠지만 재밌는 공통점이다. 김래빈도 그런 단호함을 보일 때가 있다. 대개는 녹음실 안에서고, 가끔은 차유진 앞에서다. 침대에서 과자를 먹는다던가, 욕실에서 옷을 입지 않은 채 제멋대로 뛰쳐나온다던가. 그는 옅게 웃었다. 만약 그를 개에 비유한다면, 김래빈에게 그는 여러 번 훈련시켜도 말을 안 듣는 개일 거다.
'하지만 그건 김래빈이 꼭 한번씩 무르게 굴어서인걸.'
상대가 개일 때나 사람일 때나 단호하게 굴어야 할 걸 알면서도 무르게 구는 경우야 뭐 별 거 있나. 상대가 너무 안쓰럽고, 귀엽고, 져 주고 싶어서겠지. 다시 리드줄을 김래빈에게 넘겨주며 차유진은 새삼스레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너한테 가끔 너무 물러서 큰일이야. 내 친구들이 보면 깜짝 놀랄걸.]"
"?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알아듣지 못할 말 좀 하지 말라니까! 내가 그렇게 못미더우면 그냥 네가 쥐고 있어도 돼."
"...김래빈 바보."
누가 바보라는 거야! 발끈하는 김래빈을 따라 렉스가 나지막하게 컹, 짖는다. 그는 화들짝 놀란 김래빈을 끌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라고 크게 다를 거 없다. 무르게 굴게 되는 건 결국 상대가 너무 귀엽고, 져 주고 싶고, 보기에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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