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10월 19일 / 수인AU
수인들은 수인이 아닌 인간들 앞에서는 귀나 꼬리를 잘 꺼내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 수인들은 귀와 꼬리를 감추어 꺼내지 않는 법을 배울 때쯤에 귀와 꼬리를 사용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인간의 방식에도 익숙해진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모방이다. 인간의 어린아이가 귀와 꼬리 외의 것으로 의사소통하는 방식, 즉 목소리, 표정, 몸짓, 말투와 같은 것들을 어린 수인들이 따라할 수 있도록 부모 수인들은 이 시기 수인들의 교우관계에 특히 신경쓴다.
그런 의미에서 차유진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잘 배우다 못해 활용 또한 월등하게 잘 하는 수인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는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완벽하게 이해했으며, 그가 원하는 경우 귀꼬리없이도 그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 반대로, 김래빈은 그런 점에선 말짱 꽝이었다.
"...왜?"
지금도 보아라. 차유진의 눈빛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미간이나 찌푸리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오해 없이 전달하는 데서도 낙제점이다. 저 힘 들어간 눈매를 보라. 누가 보면 그가 김래빈에게 위협이라도 당하는 줄 알 거다.
"김래빈 귀 나왔어."
그가 고개를 휙 쳐들면, 머리카락새로 튀어나와 있던 귀가 쫑긋이나 싶더니 이내 긴장감이라곤 없이 편안하게 아래로 쳐졌다. 김래빈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다시 작업물에 눈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네 앞인데 뭐 어때."
제멋대로 머리카락을 헤집는 차유진의 손길에도 그 귀는 가끔 간지럽다는듯 살랑일 뿐 긴장감 없이 늘어진 각도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차유진은 입술을 삐죽였다. 그의 손이 천천히 김래빈의 귀를 건드리다가, 뒷목으로 내려가 목깃을 살짝 잡아늘렸다.
어떤 종의 수인인지가 그 사람을 전부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떤 종의 수인인지에 따라 일종의 경향성 정도는 있는 편이고, 초식동물을 그 기원으로 하는 수인들은 대개 위기 감지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차유진은 김래빈을 보면 진짜로 그게 맞긴 한 건지, 아니면 김래빈이 정말 드문 예외인건지가 궁금했다. 그는 제 앞에 드러난 뒷목을 망설임없이 깨물었다.
"차유진, 너, 내가 사람 함부로 깨무는 건 안 좋은 버릇이라고 여러번 이야기했는데, 또...!"
펄쩍 뛴 김래빈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 차유진은 모르쇠하며 고개를 외로 꼬고 있었다. 일부러 꺼내놓은 꼬리가 느리게 살랑거렸다.
김래빈은 고양이를 기르냐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태반은 차유진이 제게 남겨놓은 털 때문이다. 오늘도 호기심에 찬 눈을 하고 제게 묻는 대학 동기에게 그는 덤덤하게 답했다.
"주기적으로 동물단체에서 청소 봉사를 하고 있는데, 그때 묻은 털이 남아있는지도 모르겠어."
아. 동기는 조금 실망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납득했다는 듯이 좋은 일 하네, 하는 한마디를 남기고는 돌아섰다. 그는 마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무사히 넘어갔다.
붙어있는 털은 차유진의 것이 맞지만 그래도 동기에게 댄 이유의 반 정도는, 엄연한 사실이다. 아무리 귀꼬리를 보이지 않게 집어넣을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해도, 수인으로 산다는 건 피치못하게 소량의 털과 항상 함께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핑계는 언제나 필요했고 수인마다 대는 핑계는 조금씩 달랐으며, 김래빈은 차유진과 동거하게 된 뒤로 친구가 동물을 기른다는 이야기 대신 동물단체에 청소봉사를 신청하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색과 종류의 털이 지속적으로 옷에 묻어날 만한 이유를 대기에는 그 쪽이 훨씬 편리했다.
물론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을 위해 봉사를 한다는 게 생각보다 즐겁고 보람차기도 했고.
"분명히 돌돌이를 여러 번 문지르고 왔는데."
제 옷에서 짧은 털을 뽑아낸 김래빈은 그걸 손가락에 쥐고 두어번 굴렸다. 그러다가 후 불어 떨구면, 털은 팔랑거리다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는 한숨을 폭 쉬었다. 차유진은 집에서는 대체로 귀와 꼬리를 편하게 꺼내두는 걸 선호하는데, 그걸로도 모자라 툭하면 그 꼬리를 그에게 치대는 경향이 있다. 감거나, 건드리거나, 문지르거나. 차유진의 꼬리는 털이 부들부들하고 억세지 않아서, 옷 위든 맨살이든 감기거나 문대지는 것 자체는 썩 싫지 않지만 털이 자꾸 붙는 건 좀 곤란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꼬리 말고도 차유진은 대체로 좀 과하게 치대는 편이었다. 자기 말로는 체취를 묻히려는 본능 때문이라는데, 김래빈은 그 말이 썩 믿기지 않았다. 일단 수인이 일반적인 인간에 비해 본능적인 성향이 조금 더 강하다는 것이 일반론이라고는 해도 최근에는 그것 역시 수인에 대한 선입견이라는 주장이 좀 더 힘을 얻고 있는데다, 차유진의 주장대로 그렇게 치대서 체취를 묻혀놓으면 뭐 하나. 제 목덜미를 매일 어지간히 잘근거려놓는 탓에 멍을 빼는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여놓느라 약냄새 때문에 차유진이 묻혀놓은 체취고 뭐고, 티도 나지 않았다.
떠올려보니 새삼 부아가 나 그는 핸드폰을 들어 차유진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나 좀 그만 깨물어.]
분명히 수업시간이어야 할 차유진에게서는 금방 답장이 돌아왔다.
[김래빈 저번에좋다고했어.]
[김래빈 변심?했어]
그리고 우는 시늉하는 이모티콘 한 개. 그의 손가락이 좀 더 빨라졌다.
[그건 저번의 한 번을 이야기한 거잖아! 그리고 네가 깨물고 나면 자꾸 자국이 남아서 그걸 수습하느라 내가 곤란하단 말이야.]
띠링. 다시 답장이 돌아왔다.
[감추는거 안하면괴잖아]
개발괴발로 돌아온 답장을 보며 김래빈은 침착하게 메세지를 보냈다. 수업 다 끝나고 이야기해.
그래서 지금, 공강시간을 틈타 김래빈과 차유진은 학교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김래빈은 굳이 카페까지 가야하나 싶었지만 당떨어진다는 고급회화를 구사하는 차유진에게는 이길 수가 없었다. 그는 무슨 스무디인가를 빨아먹고 있는 차유진을 앞에 두고 입을 열었다.
"차유진. 네 기원이 영역동물이라는 건 나도 이해하는 바야. 물론 우리는 수인이지만 완전히 인간과 동일해질 수는 없으니까."
So. 어쩐지 차유진의 반응이 평소보다 불퉁한 것 같았지만 그는 꿋꿋이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첫째로 지금 우리는 인간의 사회에 섞여살고 있기 때문에 설령 본능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게 인간 사회에서 지나치게 눈에 띌만한 부분이라면 가급적 지양하는 게 옳고, 둘째로 너와 내가 같이 살기 때문에 나를 네 영역으로 인식하는 것 자체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체로 인간들 사이에서 너와 같은 방식의 영역 표시는 주로 연인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즉 네 행동은 나와 네 사이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곤란하고 불편해. 그러니,"
"Wait. 김래빈, 잠깐."
김래빈의 말이 이어질수록 어쩐지 대단히 떨떠름한 얼굴을 하던 차유진은 결국 사레가 들린 것처럼 콜록거리더니 손을 내저어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러더니 어쩐지 골이 난 것 같은 얼굴로 폭탄선언을 했다.
"그거 정확해. 나 그런 의미로 깨물었어. 나 김래빈이랑 사귀는 사이라고 과세? 해."
"뭐?"
"벌써 눈치 챈 사람 많아. 나하고 김래빈 비밀연애 한다고 생각해."
김래빈은 그가 지금 느끼는 현기증이 한국에 온 지 몇년이나 된 차유진이 아직도 과시와 과세를 헷갈려서인지, 아니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차유진과 사귀는 사이가 되어있었기 때문인지를 알 수 없었다. 너, 너랑 나랑 왜 사귀는 사이야. 저도 모르게 더듬거리며 차유진에게 물으면 차유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만약 귀와 꼬리가 튀어나온 상태였다면 귀가 양옆으로 납작하게 내려가 있었을 표정이었다. 김래빈은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김래빈 내 귀랑 꼬리 만졌어. 나도 김래빈 귀랑 꼬리 봤어. 만졌어. 틀려?"
"아니 그건...!"
귀나 꼬리나 인간 세계에서는 보통 감추고 지내는데다 상당히 감각이 예민한 부위에 해당하는지라 수인들끼리 상대의 귀와 꼬리를 만지는 게 보통 연인들 사이에서나 행해지곤 하는 퍽 내밀한 행위로 간주된다는 건 그도 알았다. 하지만 차유진은 대체로 마치 자신은 신경쓰지 않으니 만져보라는 것처럼 김래빈의 주변에 제 꼬리를 편하게 두곤 했으며(김래빈은 그게 나름대로의 플러팅이라는 걸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김래빈 역시 차유진이 제 귀를 만지작거리는 게 외국인 특유의 개방적인 친밀함의 형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거기에 차유진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김래빈 목 깨무는 것도 허락했어. 나 김래빈 바보라는 거 잊고 있었어. [설마 그런 쪽으로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고.]"
바보라는 말과 알아들을 수 없는 투덜거림에 잠시 발끈하던 김래빈은 이내 제풀에 몸을 수그렸다. 그랬다. 그가 이제까지 아무 생각 없이 차유진에게 남을 깨무는 몹쓸 버릇이 있다고 오해해왔지만 본래 목을 깨무는 행위도 상당히 가까운 사이, 특히 성적 뉘앙스가 있는 사이에서만 할 수 있는 행위였다. 하나하나 따져보니 제가 판 무덤이었다.
'그래도...'
그는 아까보다는 힘을 잃은 목소리로 항변했다.
"꼬리는, 네가 토끼 꼬리가 실제로는 길다는 말을 들었다며 궁금해하는 바람에...!"
"Oh. 김래빈."
차유진은 답답해하거나 불쌍하다는 듯 보는 대신, 퍽 덤덤해진 얼굴로 그의 오류를 바로잡아주었다.
"보통 그거 허락 안 해. 김래빈 꼬리 만져보라 해서 나 김래빈이 OK 한 줄 알았어."
떠올려보면, 목을 처음 깨물린 것도 그때쯤이었던 것 같았다........ 차유진. 내가 네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해서 미안해,로 시작하는 긴 장광설을 시작하려던 김래빈을 차유진은 코웃음으로 막아세웠다.
"Well. It's Ok. 김래빈 벌써 '장가? 다 갔'어. I mean, 소문 빨라."
너랑 나랑 사귀는 사이라고 생각한다니까? 차유진은 눈빛으로 말했고, 김래빈은 그 눈빛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까지는 읽어내지 못했지만 적어도 사람들 사이에 단단히 오해가 쌓였다는 그 의미만은 알아들었다. 진짜? 김래빈이 온 얼굴로 경악해 전달한 질문에 차유진은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들이켰다. 평소와는 달리 목을 타고 내려가는 커피가 참 썼다.
커피를 들이키며 착잡해하던 김래빈을 턱을 괸 채 살펴보던 차유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누구랑 사귄다는 소문은 기껏해야 몇 주나 갈까. 서로 따로 다니기 시작하면 헤어졌다는 소문이야 새로 돌겠지만 그것도 치명적인 건 아니었다. 여기서 소문에 대해 더 과장을 하거나 조금 어리광을 부려 김래빈을 대충 옆에 붙잡아두는 것도 그에겐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어쨌든 좋아해서 곁에 두고 싶은 상대였다. 그는 늑대가 아니라서 자기 마음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당장은 꽤 진지했고, 그러니 이 기회에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했다.
"소문 안 중요해. 금방 없어져. 제일 중요한 거 김래빈 마음이야."
호감이 있으니 표현했고, 상대가 받아준다고 생각해서 마음껏 흔적을 남겼다. 곤란해하는 걸 어색함이나 수줍음으로 받아들인 건 제 잘못이지만 그거야 사람을 착각하게 만든 건 김래빈이 먼저니 어쩔 수 없다. 그런 부가적인 것들을 제쳐두고 나면, 결론은 둘 중 하나였다. 김래빈도 그를 좋아하느냐, 아니냐.
"그래도 지금 차이는 거 싫어. 김래빈도 고민 많이 해야 해. 김래빈 몰랐으니까 죄 있어."
그의 마지막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김래빈은 시간이 되었다며 도망치듯 떠났다. 같은 집에 사는 이상 어차피 고작 몇 시간의 유예였지만 그도 상황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겠지.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기도 한 스콘을 추가로 테이크아웃하며 차유진은 순순히 김래빈을 놔 주었다.
놔...... 주었었는데. 아주 쿨하고 멋지게.
빈 방 안을 보며 차유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집이라고 진즉에 꺼내놓은 꼬리가 불만스러운듯 바닥을 향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가 늘씬한 두 다리를 자랑하는 수인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바닥에 부딪혀 탁, 탁 소리가 났을 거다. 김래빈은 좀 눈치가 없고 바보기는 해도 제 책임을 인정 못하거나 문제를 회피하고 뒤로 미루려는 타입은 아니다. 그러니 이성은 분명 무슨 일이 있어서 늦게 들어오는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문제는 감정이었다. 아주 불만스러웠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진즉 집에 틀어박혀서 노트북이나 만지작거려야 할 김래빈이 집에 없었다. 꽤 늦은 시간인 지금까지.
집에만 없는 게 아니었다. 답장도 없었다. 이러면 걱정하는 게 당연하잖아. 그는 아주 쉽사리 제 행동을 정당화했다. 심지어 김래빈은 수인인데다가 제가 차고 넘치게 관심을 가진 상대니 어쩔 수 없다는 이유를 대가며.
물론 지금은 21세기고, 누군가한테 귀꼬리가 달려있다 한들 쟨 뭐임? 이라는 눈초리로 볼지언정 수인이라는 존재를 쉽게 떠돌리지도 못할 테고, 설령 수인인 게 들키더라도 큰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SNS를 정복해서 김래빈의 위치를 찾기 쉽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그래도 걱정되는 건 걱정되는 거였다. 그는 김래빈의 방문 앞을 두어번 왔다갔다하다가 거칠게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는 아직 채 벗지 않은 외출복 위에 저지를 걸쳤다. 김래빈과 같은 과 사람들로부터 탐문이라도 해 볼 생각이었다.
그 순간, 띠리릭 하고 문이 열리지 않았다면.
"차유진, 어디 가게? 이 시간에?"
집에 들어온 김래빈은 좀 피곤해보이기는 했지만 아주 태연했다. 눈을 휘둥그레 뜨며 오히려 그에게 묻는 게 기가 찰 지경이었다.
"김래빈 왜 늦었어!"
언성을 높여봐도 갸우뚱하고 고개를 기울인 그는 핸드폰을 들어보일 뿐이다.
"미안. 좀 늦게 보냈지."
그가 핸드폰을 찾아 손에 쥐면 김래빈 방 앞에서 빈 방을 노려보느라 한참 핸드폰을 잊고 있던 사이에 온 부재중 전화 한 건과 길고 긴 답장이 휴대폰 화면을 멋없게 덜렁 차지하고 있었다.
[차유진. 네 메세지와 연락을 확인했어. 본의아니게 걱정을 끼치게 된 점에 대해 미리 사과를 해. (중략) 나 지금 가는 중이야. 곧 도착해.]
그는 그 긴 메세지를 따라 눈을 굴렸다. 요약하자면 딴생각을 하다가 내릴 정거장을 놓치고 멀리까지 가버렸는데, 내려서 길을 찾다가 도를 논하는 사람에게 걸렸다는 모양이었다. 얼마나 정성스럽게 그 개소리를 들어줬는지 가방에 넣은 핸드폰을 중간에 확인하지도 못했단다. 나중에야 쌓인 연락과 메세지에 놀랐는데 그것도 또 하나하나 읽어보느라 연락이 늦었다는 말까지 전체적으로 맥빠지게도 하나도 놀랍지 않았다. 너무 김래빈다웠다.
"김래빈......"
그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꼬리가 맥없이 바닥을 쓸었다. 소파 근처 선반에서 빗을 꺼내 든 그는 꼬리를 슥슥 빗어내리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남아있는 습성이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면 은근히 낯설게 절 보는 상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얼굴에 생각이 고대로 쓰여있었다. 차유진이 나를 좋아한다 하더니 이런 일에 그렇게까지 걱정을.....
그는 입을 비죽였다.
"나 김래빈 그냥 친구였어도 걱정해."
그 말에 머쓱한 얼굴을 한 김래빈은 겉옷을 대충 벗은 채 그의 곁에 다가앉았다.
"내가 빗어줄까?"
"No thanks. 김래빈 지금 상처랑 약 줘?"
"그건 병 주고 약 주고.... 아니.... 미안. 오늘 일은 내가 공동생활을 하는 너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어."
그는 상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만약 귀가 나와있다면, 아래로 축 쳐져있을 것처럼 시무룩한 얼굴이었다. 평소의 그는 애매한 건 딱 질색이었다. 누굴 떠보는 건 좀 얌체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궁금했다. 제가 마음을 밝힌 후에도, 이제는 무슨 뜻인지 알면서도 김래빈이 여전히 제게 귀와 꼬리를 맡길지를.
"그럼 김래빈 귀 내가 빗어줄래."
내놓으라는듯 손을 내밀면, 순순히 뒤를 돈 김래빈이 귀를 꺼내놓는다. 이쪽이 오히려 어라? 싶어 멈칫하면 흘긋 올려다보는 김래빈과 시선이 마주친다. 먼저 입을 연 건 김래빈이었다.
"....오늘 버스에서 제대로 내리지 못한 건 네가 한 말을 고민하기 위해서였어."
그래서 그 답이 이거라는 건가? 절로 눈이 휘둥그레진 차유진이 저도 모르게 귀를 쥔 손에 힘을 주면 짧게 귀를 퍼덕거린 김래빈이 말을 잇는다.
"그런데 아직 답을 못 내겠어, 차유진."
손아귀에 힘을 빼다가 그 답에 김도 같이 빠져버린 채 그는 중얼거렸다. 뭐야. 그게.
"그럼 귀 왜 줘?"
그래도 이왕 빗도 들었고 김래빈의 귀도 받았으니, 예민한 걸 고려해 아주 살살 빗질을 해 주며 그는 물었다. 그냥. 김래빈답지 않은 불명확한 답이 돌아왔다.
"오늘은 내가 너를 놀래켰고, 넌 평소에 내 귀를 만지는 걸 좋아했고, 이게 친애인지 네가 원하는 연애인지까지는 아직 판단을 내릴만한 근거가 부족하지만 나는 네가 귀를 만지는 게 썩 싫지 않으니까."
변명이겠지만 네 말은 정말로 열심히 고민하고 있어. 제게 귀를 맡긴 채 성실하게 경과를 보고하는 그 정수리를 내려다보다가 차유진은 짧게 한숨을 삼켰다.
그냥 잡아먹어 버릴 수도 없고, 이걸.
장수민은 개과 수인이다. 대학 내 비공식 수인 네트워크에서 만났다. 장수민 쪽이 워낙 친화력이 좋기도 했지만, 또 미술 전공이라 그와 마찬가지로 과제에 치여산다는 공통점이 있어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김래빈이 차유진 외에도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였다.
"둘이 사귀는 사이 아니었다고?"
...그 친한 친구마저도 둘을 사귀는 사이로 오해하고 있었던 걸 보면 자신이 정말로 행실을 잘못하고 있었던 게 맞나보다. 김래빈은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반성했다. 그의 얼굴 표정으로 대답을 유추했는지 상대는 오, 하고 입술을 오므리고는 꽤 길게 아무 말이 없었다. 그들은 교내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상담료 명목으로 김래빈이 사들고 간 아이스 아메리카노 샷 추가 버전이 오후 햇살에 벌써 미지근해지고 있었다. 테이크아웃 컵에 맺힌 물방울을 손으로 대충 털어낸 장수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야 차유진 잘 모르니까 하는 소린데, 걔가 애인으로 그렇게 별로야?"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김래빈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쎄. 그런 쪽으로는 아예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친구이자 룸메이트의 입장에서 보자면 차유진이 그렇게 나쁜 애인일 거라고 판단되지는 않아."
"그럼 그냥 사귀어보면 안 돼? 봐봐. 차유진은 니 좋다며? 너도 차유진이 싫은 건 아니라며? 그럼 뭐가 문제야?"
단숨에 와다다 뱉어버린 수민이 빨대를 입에 물고 쪽 빨아들였다. 그러게. 김래빈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뭐가 문제인지는 몰라도 차유진과 그냥 사귀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장수민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반 넘게 비울때까지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공강을 낀 시간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차유진은 일단 나를 좋아한다고 밝힌 상태잖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김래빈은 그 말을 삼켰다.
"그러니까 가급적이면 좋아하는 마음에는 좋아하는 마음을 돌려주고 싶어. 내가 차유진을 좋아하지 않는데 나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사귀고 싶지 않은 것 같아."
에이, 우리 나이에 결혼할 것도 아니고 뭐 어때. 가볍게 타박하듯 말했던 수민은 김래빈이 꽤 오래 침묵을 고수하고 있자 의아한 얼굴을 했다가 천천히 침착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게 문제구나. 선문답처럼 꺼내어진 말은 김래빈으로서는 짐작하기가 어렵다.
"우정인지 사랑인지 염병인지는 몰라도 너는 차유진이 너무 소중해서 차유진 마음을 함부로 하고 싶지 않은 거야."
그 정도면 그냥 사귄다고 하더라도 난 딱히 차유진 감정을 함부로 한다는 생각은 안 들 것 같은데. 장수민은 좀 투덜거렸지만 그의 결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 점이 편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건데. 장수민이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계기로 상대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이라고 확신하는지를 살펴본다면 내 감정도 무엇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최대한 다양한 레퍼런스를 살펴보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맥락과 상황에 기반해 사랑에 빠진다는 결론만 얻었어. 결과적으로 나의 사례에 일반적으로 적용하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린 채로 답보상태야."
그 말에 장수민은 김래빈의 등짝을 내리쳤다. 바보야. 당연히 어렵지. 예술가들이 왜 몇천 년 동안 사랑 하나를 그렇게 붙들고 늘어지겠어. 벤치에 늘어진 그는 다 마신 아메리카노의 빨대를 지휘봉처럼 휘두르며 조언 하나를 건넸다. 다른 친구랑 걔가 특별히 다른 지점이 있는지,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를 한번 생각해봐. 난 사랑은 어쨌든 우정이랑은 다르다 파니까. 그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잘해. 좀비동지. 예대의 저력을 보여줘야지."
아마도 응원이겠지? 예대의 저력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김래빈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생략)
김래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차유진이 움직였다. 손목이 붙들린 채 몸이 밀쳐졌다. 엇 하는 사이에 기울어진 몸이 소파로 우당탕 넘어진다. 정신을 추스르기도 전에 그 위를 선점한 차유진이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밀어누르고 우악스럽게 어깨를 잡아 젖힌다. 목덜미에 아슬아슬하게 이가 닿기 직전, 코웃음을 친 차유진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래서 김래빈, 확인했어?"
절 한번 습격해보라는 말을 했다가 말을 다 끝맺지도 못하고 덤벼드는 차유진에게 완벽하게 제압당한 김래빈은 눈을 크게 뜬 채로 눈만 깜박이고 있다가 제가 꽤 놀랐다는 걸 인정했다. 절로 튀어나와 바짝 곤두선 토끼귀가 그가 고개를 바르작댈 때마다 소파의 팔걸이에 쓸렸다.
"그렇게 바로 할 줄은 몰랐어."
"김래빈 말 끝나는 거 기다리고 하면 김래빈 안 무서워."
그건 네 말이 맞아. 김래빈은 수긍했다. 그는 제 놀란 가슴이 고요하게, 그러나 격렬하게 콩닥거리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분명히 본능의 언저리에서는 차유진의 행동을 위협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위협이 힘의 격차에서 오는 것이든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격차에서 오는 것이든. 하지만 역시 본능 수준 이상의 위기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귀꼬리가 노출되어있어 평소보다 감각이 예민하고, 자세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여전히 완벽하게 제압당해있는데도.
그는 차유진을 멀뚱히 올려다보았다. 짧은 대화라도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 두근거림이 가라앉기엔 충분했다. 실제로 놀랐던 감정은 많이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전히, 미약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제 손목을 강하게 누르던 차유진이 그가 놀란 걸 확인하자마자 그의 손이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만 힘을 빼서 잡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였나. 아니면 실내등을 가려 그림자 진 차유진의 얼굴에서 그 눈동자가 유독 예쁘게 반짝인다고 무심결에 생각했을 때부터였나.
그가 스스로의 반응에 당황한 채 말을 잃고 있는 사이 김래빈 그러고 있으니까 진짜 토끼같아, 하며 킥킥 웃던 차유진은 이내 뚱하게 눈썹을 들썩였다.
"Well. 근데 나 언제까지 이래? 계속 이러면 김래빈 다른 의미로 위험해."
완벽하게 자세의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도 호승심이나 장난기, 우쭐함 대신 일말의 망설임과 머뭇거림을 담은 차유진의 눈빛을 김래빈은 제 속도대로 아주 느리고 또 힘겹게 읽어내었다. 그는 시선을 좀 더 위로 들어올렸다. 북슬한 머리카락 사이 솟은 차유진의 귀가 반응을 낱낱이 읽어내려는듯 기민하게 제 쪽을 향하고 있었다. 어쩐지 손끝이 간지러워 그는 손가락을 살짝 움츠렸다.
"차유진."
김래빈은 제 말이 그들의 관계를 아주 많이 바꾸리라는 걸 알았다. 이제는 정말로, 변명할 길도 빠져나갈 길도 없으리라는 것도. 하지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네 귀를 만져도 될까?"
"뭐?"
제가 잘못 들었냐는듯 차유진의 눈썹이 다시 다른 각도를 그리며 움직였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켜고는, 아까보다는 덤덤하게 뱉어냈다.
"음... 그러니까, 네 귀를 만지고 싶은데 만약 허락을 해줄 거라면 만질 수 있도록 손은 놓아줬으면 좋겠어."
"......진심이야? 김래빈 이제 뜻 알아. 그래도?"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황한 것처럼 연신 눈을 깜박이던 차유진이 천천히 손을 물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긴장한 것처럼 바싹 곤두선 귀 끝에 살그머니 손가락을 얹으면 차유진이 눈을 감았다. 그는 제 손가락을 감싸는 털의 방향을 따라 손가락을 미끄러뜨리듯 움직였다. 유연하지만 탄력이 있는 부위의 감촉이 손을 타고 느껴졌다. 귓바퀴를 따라 덧그리듯 엄지손가락으로 차유진의 귀를 더듬던 그는 참고 있던 숨을 길게 뱉으며 손을 물렸다. 그 움직임을 따라 다시 눈꺼풀을 들어올린 차유진이 그와 고요히 시선을 맞대었다. 맹수의 눈이었다.
김래빈은 제가 잡아먹힐 걸 직감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또렷한 의지를 담은 시선으로 시선을 되받아치면 차유진의 고개가 그에게로 숙여졌다. 송곳니가 그의 입술에 닿았다. 피식의 시간이었다.
김래빈의 목에는 다시 반창고와 파스가 돌아왔다. 그날 차유진은 김래빈의 불만어린 눈초리에도 아랑곳 않고 기분이 좋은 것처럼 꼬리를 연신 살랑대었고 다음날 만난 장수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눈으로 관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뭐. 사랑 좋지. 간밤에 야작으로 밤을 지새운 만큼 멀쩡한 정신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장수민은 친구의 경사를 솔직하게 축하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정작 보이지 않게 속으로 집어넣고도 여전히 욱신거리는 감각이 남아있을만큼 귀와 꼬리를 잔뜩 깨물리고 목에는 자국이 남고 그 외에도 여기저기 차유진에게 이런저런 의미로 치이고 난 김래빈은 사랑이고 뭐고 좀 죽을맛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한 수인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수인들의 생태 이해라는 필수교양과목이 지정되었는데, 그때의 교수님에게 항의라도 하고 싶은 심경이었다. 수인들이 본능에 가까운 행위를 할 때에는 그 기원이 되는 짐승의 본성이 좀 더 강하게 드러나는 편이라고는 하셨지만 고양이과들이 그렇게 죄 입질을 한다는 말씀은 안 해주셨잖아요. 물론 김래빈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수업시간은 한정되어있고 교양과목은 개괄적인 이론을 다루는 수업이기 때문에 특정한 종의 기원을 가진 수인을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다뤄줄 수 없으셨을 것이며, 차유진의 사례가 모든 고양이과 수인의 일반화가 될 수는 없으리라고 교수님에 대한 셀프변호까지 끝난 채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좀 좋았다. 좋았던 제가 있었다. 그래. 무엇을 부정하겠는가. 김래빈도 끝장나게 즐겼다. 나중에는 더 깨물어달라고 했다. 행위 도중 차유진의 도드라지는 송곳니를 볼 때마다 은근히 깨물리고 싶어 안달냈던 걸 차마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제 머리를 양손으로 감쌌다.
"대체 사랑이란 뭘까..."
현타와 한탄의 중간정도에서 그가 중얼거린 말에 장수민은 깔깔 웃고 정답을 내면 찾아오라고 말하곤 사라졌다. 그에게는 오늘도 오늘의 야작이 남아있으니까. 김래빈이 위로차 사들고 간 당 충전용 스콘과 샷 추가한 아메리카노는 다시 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였다.
'그러고보니까 차유진도 이 카페 스콘 좋아하는데.'
그는 껍데기만 남은 스콘 포장지를 주섬주섬 접어 근처 쓰레기통에 버리며 갈등했다. 차유진이 뭐가 예쁘다고 그런 걸 사들고 가냐는 마음과 그래도 애인이고 스콘 사가면 귀여운 반응을 보일 거라는 마음이 서로 싸워댔다. 결과적으로 집에 돌아가는 그의 손엔 스콘 두 개가 예쁘게 들렸다. 그는 한숨을 쉬고는 차유진이 귀가하면 바로 볼 수 있도록 스콘을 거실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방에 처박혔다. 그에게도 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었다.
대학교 과제는 그가 아무리 작곡과 교수님들의 귀염둥이, 타칭 천재, 작곡과 내 비공식적 음악 뽑아내는 AI라고 불려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김래빈은 제가 끙끙거리고 있는 사이 차유진이 들어와 스콘을 물고 제 뒤에 서 있는 것도 몰랐다.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가 제 바로 뒤에 서 있는 차유진을 보고 깜짝 놀라 의자에서 튀어오를뻔한 그는 그 와중에도 반사적으로 저장 버튼부터 눌렀다.
"Oh. 김래빈 방금..."
차유진은 말을 끝내지 않았지만 김래빈은 그가 무슨 말을 생략했을지 알 것 같았다. 토끼같았다고 하려 했겠지. 김래빈은 제 종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고 토끼같다는 말을 들어도 무던하게 반응하는 편이었지만 지난 밤 차유진은 유독 과했다. 차유진은 마치 김래빈이 귀여울 때, 사랑스러울 때, 놀리고 싶을 때, 그냥 그의 귀와 꼬리를 잘근거리고 싶을 때마다 토끼같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고, 처음에는 나는 토끼같은 게 아니며 토끼가 맞기는 하지만 그건 기원이 되는 종일 뿐 실제로는 수인이기 때문에 토끼같다는 표현을 쓰면 상대에게 실례라며 그에게 하나하나 잔소리하던 김래빈도 나중에는 차유진이 토끼의 ㅌ만 꺼내도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제 실수를 아는지 눈을 도르륵 굴리던 차유진이 그에게 덥석 스콘을 내밀었다.
"너 먹으라고 사 온 건데."
"같이 먹으면 더 좋아."
우습게도 그 간단한 행동에 부아가 스르륵 풀려버린다. 그가 의자에 깊게 몸을 묻으면 그 위로 팔을 얹어 고개를 기댄 차유진이 애교를 부리듯 뺨을 부볐다. 반 나눠먹을래? 물으면 또 냉큼 고개를 끄덕인다. 김래빈이 스콘을 반으로 갈랐다. 상대에게 조각을 내밀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인 차유진이 입으로 스콘을 물고, 그러면 그의 손가락을 차유진의 송곳니가 살살 긁고 지나갔다. 카페에서 제일 단 맛으로 사간 게 효과가 있었는지 기분 좋게 샐샐거리는 그 얼굴을 보면서 김래빈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무래도 고양이에게 된통 물린 게 확실한데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질 않았다. 저거야말로 진정한 병주고 약주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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